"영국의 조건이 제일 좋았습니다."위성방송 셋톱박스 생산업체인 휴맥스의 북아일랜드 뉴타우나드 공장 허 정 이사는 유럽현지 공장부지를 물색하기 위해 1996년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웬만한 유럽 국가는 모두 돌아다녔다. 다음해 휴맥스가 선택한 곳은 영국 북아일랜드였다. 영국 정부의 지원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허 이사는 "초기 자본금이 100만파운드였는데, 시설투자 보조금과 고용보조금 등으로 받은 지원금이 90만파운드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영국 정부는 '영국에 있으면 영국 기업'이라는 논리로 영국기업과 외국 투자기업을 차별하지 않는다"며 "노동자들의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떨어지는 게 아쉽지만 영국 투자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저임 노동력이 풍부한 동구(東歐)가 부각되면서 예전 같지 않지만, 영국은 외국자본을 적극 유치해 성공한 대표적 국가이다. 영국은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전세계 국가로부터 4,845억달러의 투자자금을 끌어들여 제조업 기반의 급속한 붕괴를 막았다. 또 50만명 이상의 영국 노동자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해 영국을 유럽에서 실업률(2002년 3.1%)이 가장 낮은 나라로 만들었다.
영국으로 외국 자본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흔히 외국 기업에게만 투자금을 대줄 정도로 적극적인 투자 유치정책 때문이라고 알고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국 정부는 외국 기업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지 않는다. 경제 발전이 더딘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 투자하거나, 대규모 고용을 하면 영국 기업이라도 부지를 무상으로 빌려주고, 투자금 일부를 지원한다. 역차별 논란이 벌어지는 한국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주영 대사관 정승일 상무관은 "외국인 투자가 몰리는 것은 영국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영국 대외무역청(BTI) 관계자도 "세제, 금융, 물류, 노사관계 등 기업 경영과 관련된 전 분야에서 영국이 경쟁국을 앞선다"고 주장한다. 개인소득세율(최고 40%)이 독일(48%), 프랑스(53%), 네덜란드(52%) 등 경쟁국보다 낮고, 노사분규에 따른 근로손실일수(30일)도 EU 평균(60일)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투자유치 조직을 구축한 것도 투자를 촉진시키고 있다. 영국은 중앙정부 공무원만 150명이며, 해외에 파견한 70명의 투자유치 전담 주재관과 12개 지방조직까지 감안하면 3,000여명이 투자유치에 매달리고 있다. 반면 한국은 외국인 투자유치와 간접적 연관이 있는 부서까지 감안하더라도, 100명을 넘지 못한다.
/런던=조철환기자 chcho@hk.co.kr
■ 더넷 英 남동부개발청장
"영국의 외국인 투자유치 성공 배경에는 '3L'이 있습니다."
영국의 공업중심지인 영국 남동부 지역의 외국인 투자유치를 담당하는 남동부개발청(SEEDA) 앤터니 더넷 청장(사진)은 '노동(Labor) 시장의 유연성', '세계어가 된 영어(Language)', '미국과 유사한 법제도(Law)' 등 3가지 요인이 대외 개방을 지향하는 영국 경제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더넷 청장은 "한국이 동아시아 경제중심을 국가전략으로 삼고 있듯이 영국도 유럽의 허브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지리적으로는 유럽 대륙의 외곽이지만, 영국은 '3L'의 우위를 바탕으로 유럽의 관문이 됐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영국은 2001년까지 미국과 일본 기업이 유럽에 투자한 자금의 각각 41%와 46%를 독식하고 있다.
영국의 발달한 물류 인프라와 금융산업도 영국을 유럽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더넷 청장은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이 유럽본부를 지리적 중심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두고 있으면서도, 런던에 비슷한 규모의 조직을 두고 있는 것은 이곳이 금융과 정보의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넷 청장은 "영국 정부는 이제 단순 조립형 투자보다는 연구개발 센터나 첨단 분야 기업의 투자 유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연말께는 한국 첨단기업의 영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SEEDA 사무소를 서울에 개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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