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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술계 주목 韓·獨작가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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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술계 주목 韓·獨작가 개인전

입력
2003.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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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와 볼프강 라이프. 한 사람은 끓어오르는 열정, 한 사람은 침잠한 적요다.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한국과 독일 작가가 대형 개인전을 통해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여름에는 볼 만한 전시가 없다는 통념을 이들은 보란 듯이 깨고 있다. 무더위를 씻을 수 있는, 놓치기 아까운 전시회다.●서도호展

서도호(41)는 일찌감치 우리 미술의 젊은 힘으로 국제 미술계의 인정을 받았지만 국내 개인전은 처음이다. 아트선재센터에서 9월7일까지 열리는 전시에서는 신작 2점을 포함한 6점의 설치 작품을 볼 수 있다.

평자들은 서도호의 작품세계를 ‘정치학과 미학, 혹은 시학의 결합’이라고 분석한다. 한국인으로서의 경험, 즉 학교와 군대, 정치 체험이 작품의 기저를 이루지만 그는 이런 경험을 개인 대 집단, 권력 대 군중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으로 끌고 가 예술의 보편적 언어로 승화시킨다.

전시장 바닥에 깔린 작품 ‘FLOOR’는 손가락만한 수천 개의 인물상이 유리판을 떠받치고 있는 형태다. 멀리 보면 잘 알 수 없지만 자세히 보면 이 작은 인물상은 군중을 이루어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유리판을 떠받치고 있다. 각 인물상은 높이 약 5㎝로, 각각 다른 인종과 성별의 6가지 주형에서 만들어 졌다. 관람객으로서 유리판에 올라서서 이 군중들을 밟고 섰을 때의 느낌은 한마디로 당혹감이다.

전시장 벽에는 사방연속무늬의 벽지 같은 작품 ‘WHO AM WE?’가 있다. 단순한 벽지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무늬하나하나가 모두 서로 다른 인물의 얼굴이다. 작가는 가족과 친지와 친구, 다시 그들의 가족과 친지와 친구로 가지를 뻗는 약 4만 명의 얼굴 사진을 모아 이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을 보는 관람객은 동시에 그들로부터 응시당하고 있다.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다.

‘SOME/ONE’은 거대한 은빛 갑옷 모양의 아름다운 설치이지만 이 역시 작가가 수천 개의 군대 인식표로 제작한 작품이다. 전시장 바닥에서부터 이어 붙여진 인식표들은 공간 한복판으로 올라가 갑옷의 형상을 완성한다. 2003년 작 ‘KARMA”는 전시장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거대한 다리, 그 발 밑에 깔린 군중의 형상을 하고 있다.

‘PARATROOPER _ I’는 한 낙하산병이 낙하산 줄을 끌어당기고 있는 형상이다. 눈부신 분홍 형광색의 낙하산 줄을 끌어당기며 이 병사는 지상에 안착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줄의 끝을 따라가보면 거기에는 무수한 사인들이 적혀있다. 작가가 만난 사람들에게서 받은 사인이다. 낙하산 줄은 이 병사와 연결된 수많은 인연의 끈이고, 병사는 바로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서울대와 예일대 미대를 졸업한 서도호는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와 뉴욕 휘트니미술관 필립모리스 분관,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 개인전 등으로 해외에서 먼저 작품세계가 알려졌다. 현대미술의 지배적 관심사를 다루는 역량 있는 작가라는 평가다. 관람 문의 (02)733_8945

●볼프강 라이프展

한 남자가 대리석 위에 우유를 붓는다. 표면이 약간 오목하게 처리된 하얀 대리석 위에 흰 우유를 매일 붓고 비우고 다시 붓는 행위는 일종의 제의다. 대리석의 모서리와 우유가 만나는 접점에서 차가움과 따뜻함, 비어있음과 채워짐, 정지와 유동이라는 가치가 하나로 통일된다. 독일의 세계적 현대미술 작가 볼프강 라이프(53)가 1975년 처음 발표한 이 작품은 ‘우유 돌’.

국립현대미술관이 9월12일까지 여는 볼프강 라이프의 ‘통로_이행’ 전에는 70년대 중반 이후의 설치와 조각, 사진, 드로잉 등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보여주는 53점이 출품됐다.

‘우유 돌’에서 보듯 라이프는 꽃가루, 쌀, 밀랍 등 자연의 소재를 작품의 재료로 사용한다. 그것은 그에게 자연에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는 영적 에너지다. 라이프는 이 재료로 삼각형이나 사각형, 사변형, 원뿔 등 기하학적 구조를 가진 절제되고 순수한 형태의 작품을 만든다. 그에게 미술 작품을 만드는 행위는 어떤 단순성의 추구이고, 그 단순성으로 직관에 이르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명상이다.

그의 작업이 처음 국내에 알려진 것은 97년 광주비엔날레를 통해서였지만 최근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마인드 스페이스’ 전에 출품한 설치 작품 ‘밀랍 방’으로 특히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77년 세계 미술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작업 ‘꽃가루’에서 그는 집 주변에 널려있는 민들레, 송화, 이끼 등의 꽃가루를 채집해 세심하게 체로 거른 뒤 이를 바닥에 뿌리거나 병 속에 넣어 전시했다.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쌀 집’ ‘밀랍 방’ ‘밀랍 배’ 설치로 삶과 죽음, 혹은 그 두 세계를 관통하는 영적 체험을 형상화했다.

이번 개인전의 제목 ‘통로_이행’은 이처럼 인간과 우주를 이해하는 통로이자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이행으로서의 예술 작품과 행위를 보여준다. 라이프는 “꽃가루든 우유 돌이든, 나는 작품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그것이 전시를 통해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예술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드러낸다.

라이프는 독일 메칭겐 출생으로 튀빙겐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 74년 의사가 됐지만 그 후로 오로지 미술 작품 활동만 했다. 어린 시절부터 인도와 근동, 극동 지역을 여행하며 체험한 동양적 사유와 생활방식이 그의 작품에 그대로 녹아있다. 물질적, 논리적 사고의 한계를 자각한 서구인의 비가시적이고 영적인 세계에 대한 추구인 셈이다. 관람 문의 (02)2188_6000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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