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발언]아이들에게 까맣게 탄 여름방학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발언]아이들에게 까맣게 탄 여름방학을

입력
2003.07.23 00:00
0 0

전국의 초등학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여름 방학에 들어가면서 부모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초등학교들은 19∼25일 방학에 들어가 8월 말 개학하도록 돼 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아이가 방학 때 공부하지 않으면 개학한 뒤 학업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필자는 적어도 초등학생에게는 방학 때 자유롭게 뛰어 놀 기회를 주는 것이 낫다고 본다. 이것은 필자가 경험으로 터득한 지혜이다.나의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의 일이다. 아이에게 여름방학 생활계획표를 만들라고 시켰더니 아이가 마지못해 만들어 보여 주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공부'로 채워져 있었다. 실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여간 기특했다.

그런데 생활계획표 아래쪽에 조그맣게 '이 계획은 사정에 의해 변경될 수 있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계획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도록 변명거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허탈했지만 아이가 "방학은 내 계획대로 하겠다"고 딱 잘라 말하는 통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아이는 한달 남짓한 기간 멀리 떨어진 친척들을 찾아가 여러 날을 또래들과 어울렸다. 사회 단체가 실시하는 캠프에도 참여했는데, 온 몸이 까맣게 타서 돌아왔다. 아이가 책은 들쳐보지도 않았지만 모른 척 했다.

이제 중학생이 된 아이는 당시의 즐거운 경험을 지금도 자주 이야기한다.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아이는 공부도 제법 잘 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 만약 방학 때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닦달했다면 아이에게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아이들은 시골에서 논두렁을 다니고 도시에서는 골목 사이를 쏘다니며 새카맣게 그을릴 때 무럭무럭 자란다. 가끔은 자녀를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냥 내버려두기가 정 어렵다면 아이 스스로가 정리 정돈하는 습관 정도를 가르쳐주자. 잠자고 난 뒤 침대와 이불을 정리하고 아침을 먹고 음식을 치우고 어머니의 설거지를 돕도록 하자. 어느 학원에 보내면 아이가 공부실력이 늘어날까, 그룹 과외를 시켜볼까 하는 고민은 잠시 잊자. 부모가 먼저 방학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참다운 방학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오 병 익 청주 덕벌초등학교 교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