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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의 그림에 담긴 국악]강세황―현정승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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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의 그림에 담긴 국악]강세황―현정승집도

입력
2003.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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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지'의 저자 홍만종은 "살면서 넉넉해지길 기다리지만 어느 때나 넉넉해질까/ 늙기 전에 한가함을 얻어야 그게 진짜 한가함이네" 라고 말했다. '늙기 전에 얻어야 할 진짜 한가함'이 얼마나 얻기 어려운 것이기에…. 홍만종의 글귀에 담긴 뜻을 마음에 담고 '흐르는 세월 쏜살 같다 애석해 하지 말고 마냥 취하기를 사양치 말라'고 권하는 강세황(姜世晃·1713∼1791)의 '현정승집도(玄亭勝集圖)'를 본다.그림 속의 어른 남자들은 모두 정장을 한 채 거문고가 놓인 널찍한 마루 위에 앉아 바둑을 두거나, 부채질을 하거나, 책을 보던 중인 듯 뿔뿔이 앉아 있다. 언뜻 봐서는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런데 그림에 붙은 발문과 시문(詩文)을 보면 친한 선비 몇몇이 막 '초복 달임'을 끝내고 모여 흥겹고 놀고 있는 중이다.

'초복 달임'이란 더위를 물리치려고 고깃국을 먹는 풍속인데 이들은 1747년 음력 6월 초복 다음날에 현곡(玄谷) 청문당(聽聞堂·경기 안산시 부곡동 소재 경기문화재자료 제94호)에 모여 가장(家獐, 개·狗라 하지 않고 노루 '장'자를 쓴 것이 재미있다)을 먹고 거문고와 노래를 들으며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놀았는데 이날 어찌나 즐거웠는지 피곤함을 다 잊었다고 했다.

이날 거문고를 연주하는 이는 강세황이었을 것이다. 화가 강세황은 평소 거문고를 즐겨 탔다. 특히 병약했던 그는 여행을 하는 대신 산수화를 벽에 걸어두고, 높고 낮은 거문고 가락이 그림 사이에 깃들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때로는 그림이 거문고인지 거문고가 그림인지 모를 삼매경에 젖기도 하면서 마음에 평화를 얻었다고 하니 그의 거문고 솜씨는 복날 더위를 가시게 하고 모처럼 취흥에 젖은 친구들을 신선놀음의 세계로 데려다 주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장맛비가 걷히고 매미 소리가 드높게 들려오는 날 청문당의 초복 모임을 그림으로 그린 강세황은 '탁 트인 산 경치를 바라보며 벌인 술자리, 거문고 곡조 솔바람 따라 멀리 흩날리고 우박이 개이자 바둑 두는 소리 서늘하다'고 노래한 뒤 '촛불 잡고 마냥 취하기를 사양 마소/ 흐르는 세월 쏜살같다 애석해 하랴'라고 이날의 즐거움을 드러냈다.

복 더위 속에서 술을 마셨으니 그 더위가 오죽했을까. 그런데도 이들은 거문고 곡조에 묻어오는 솔바람, 바둑 두는 소리에 깃든 서늘함이면 족하지 않느냐는 듯 앉음새가 단정하기만 하다. 기껏해야 갓끈을 풀고, 버선을 벗는 정도의 작은 '일탈'이 이날의 '흥'을 드러낼 뿐이다. 이들의 더위를 식혀준 '솔바람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 나도 그렇게 될까?

/송 혜 진 숙명여대 전통문화 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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