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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품어온 "惡의 毒"을 토하다/박상우 네번째 장편소설 "가시면류관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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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품어온 "惡의 毒"을 토하다/박상우 네번째 장편소설 "가시면류관 초상"

입력
2003.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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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되기 한참 전인 스물 두 살 어떤 세례를 받았다. 겨울 어느날 서울 남가좌동 언덕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었다. 해질 무렵 도시의 풍경. 이미지의 세례를 받고 작가가 되었으며, 그때의 그 풍경을 언어로 옮기려고 몇 번이나 애썼다.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일이었고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했다.박상우(45)씨는 23년 만에야 소설을 완성했다. "이미지가 소설로 변하는 과정에 숱한 변화와 뼈저린 세월이 동원된 셈이다. 내 청춘을 제물 삼아 이 소설을 완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네번째 장편 '가시면류관 초상'(문학동네 발행)은 다음주 초 출간된다. 성서에 나오는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다.

소설은 두 권의 노트를 두 개의 축으로 삼아 전개된다. 카페의 여주인이 주인공 유인하에게 준 노트 '필사본 기록'과 유인하 가족의 비극적 사건이 적힌 노트 '카인의 비밀 일기'다. '필사본 기록'에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중 성서에서 빠진, 살인 사건의 뒷얘기가 담겨 있으며, '카인의 비밀 일기'에는 살인과 자살, 근친상간 등으로 얼룩진 유인하의 가족사가 담겨 있다. 모두 지켜져야 할 것에 대한 위반의 기록이다.

"나의 오른쪽 어깨 위에는 천사가 앉아 있고 나의 왼쪽 어깨 위에는 악마가 앉아 있다. 나는 항상 천사와 악마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다. 그곳이 작가라는 이름의 연출가가 머물러야 할 위치다." 그의 말은 맞다. 모든 작가는 선한 것과 악한 것의 경계에 서 있다. 문학 작품은 선과 악의 위태로운 줄타기다. 문학이 숙명적으로 품고 있는 악마성도 매혹의 한 빛깔이다.

박씨의 신작은 그러나 그 악마성을 세상에 조금씩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악마성을 덩어리로 내놓는다. '가시면류관 초상'은 악마, 지옥, 폭력, 광기, 해체, 살인 등으로 이뤄졌다. 소설에서 카인은 여자 때문에 동생 아벨을 죽이고 자신은 아들이 쏜 화살에 맞아 죽으며, 유인하는 동생의 애인과 관계를 맺고 아버지를 죽인다. 모든 악한 것들의 응축이다. 작가는 '가시면류관 초상'이 완성된 뒤 스스로 놀랐다고 했다. "오랜 세월 나를 사로잡고 있던 이미지가 비로소 언어로 해독된 때문이다."

'가시면류관 초상'은 작가가 오랫동안 품었던 독을 짜내는 작업이다. 독으로서의 그의 소설은 짜임새가 있다기보다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뱉어진 때문이다. 박씨는 "해독된 이미지는 내 소설의 또 다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독기를 빼낸 뒤 작가의 행보가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23년 전 문청이었던 박상우씨가 보았던 그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보았다. 지옥이 그 아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가 본 곳, 그가 몸을 둔 그 곳이 지옥이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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