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1회용 라이터나 종이(백상지) 등 사양산업에 집중됐던 외국업체의 저가공세가 산업용 로봇과 전자·화학 소재 등 첨단업종으로 급격히 옮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2000년까지 연평균 10건 미만이던 외국 기업을 상대로 한 국내 업체의 반덤핑 제소 건수가 지난해 18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2003년에도 상반기에만 8건이 접수되는 등 급증하고 있다.현대중공업은 21일 화낙, 야스카와, 나찌, 가와사키 등 일본의 산업용 로봇업체 4곳을 '덤핑 공세'를 이유로 산업자원부 무역위원회에 제소했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3월 현대자동차가 실시한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 투입할 산업용 로봇(656대) 공개 경쟁 입찰에서 일본 화낙사와 야스카와 2개사에 고배를 마셨다. 1998년부터 100% 자체 기술로 산업용 로봇을 양산, 국내 시장의 40%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으로서는 무역위 제소가 일본 업체에 대한 반격의 성격을 띠고 있는 셈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후발주자인 현대중공업을 몰아내기 위해 일본 업체가 덤핑 공세를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165㎏짜리 자동차 용접용 6축 다관절 로봇의 경우 일본내 시장가격이 평균 330만엔(약 3,300만원)이지만, 한국내 판매가격은 250만엔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첨단 업종에서 외국업체의 저가공세를 이유로 국내 기업이 무역위에 제소한 사례는 현대중공업이 처음이 아니다. 산자부 무역위 김열 조사총괄과장은 "PS인쇄판과 녹음가능CD(CD-R) 등에서도 국내 업체가 외국 업체를 제소, 15∼30% 가량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고 말했다. 무역위에 따르면 PS인쇄판과 CD-R은 최근 아그파 코리아와 SKC가 국산화에 성공한 품목인데, 국내 수요 전량을 공급하던 일본, 네덜란드, 대만 업체들이 한국산을 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원가의 70∼80%까지 값을 낮춰 물건을 공급했다.
김 과장은 "2000년까지는 섬유와 1회용 라이터 등 국제 경쟁력을 잃어가는 분야에서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제소가 접수됐으나, 2001년부터 대기업과 첨단업종 기업의 제소가 늘면서 전체 제소건수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 동안 대기업들은 수출시장에서의 마찰을 우려해 덮어두는 분위기였으나 최근에는 INI스틸이 러시아 철강업체를 무역위에 제소하는 등 적극 공세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강후 무역조사실장도 "미국은 정밀 현장조사를 벌여 미국 기업에 피해를 준 외국 기업을 철저히 제재하지만, 한국은 인력부족으로 전표점검 위주의 조사로 혐의 입증에 실패해 덤핑을 벌인 기업에 대한 제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이종수기자 jslee@hk.co.kr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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