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후속회담의 형식과 시기가 가닥을 잡아가는 가운데 북미 양자대화를 통한 체제보장을 대화의 선결조건으로 고집해온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미국의 대북(對北) 체제보장 방식을 놓고 입장이 유연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특히 그 동안의 북미 불가침조약 주장과 함께 '불가침서약'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문서형식이 아닌 구두형식의 약속도 용인할 수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북한이 불가침서약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1일. 당시는 11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진행중이어서 북한이 적극적으로 태도 변화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뜻으로 해석됐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서약이라는 용어가 문서형식의 조약 대신 구두형식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북핵 관련 대화가 실질적으로 진전될 가능성을 보이는 것"이라고 반색했다.
이와 관련, 아사히(朝日)신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4일 평양을 방문한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북미간 진지한 대화가 가능하다면 대화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19일 보도했다. 20일에도 모스크바의 외교소식통이 "북한은 부시 대통령이나 체니 부통령, 파월 국무장관 중 1명이 구두로 체제보장을 약속하면 5자회담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전하는 등 북한의 태도 변화를 시사하는 보도가 잇따랐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도 회담 재개를 낙관하는 모습이다. 라종일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21일 "방향이 다자로 잡혀있고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질 전망이 높다"면서 "북한의 태도변화가 긍정적인 진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단정짓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북한은 이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불가침조약'과 '법적 확약'이라는 용어를 다시 사용하며 북미간 담판을 촉구했다. 이로 미뤄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공식 입장이 나올 때까지 '전략적인 모호성'을 유지하겠다는 뜻인 것으로 풀이된다. '3자 후 5자회담'이 거의 합의단계에 이르렀다는 내외신 보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각종 매체를 통해 양자회담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함께 제2의 핵 재처리 시설 보유설, 대량살상무기의 확산방지구상(PSI) 체제 등 북한을 자극하는 요소가 많아질 경우 북한 내부에서 군부 등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변화의 여지가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단적으로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각종 채널을 통해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중국을 지렛대로 한 다자회담의 틀 속에서 북미간 실질적 논의가 가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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