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추억의 소품이나 개그의 소재로만 남은 대한뉴스. 1994년 12월 2040호 방송을 끝으로 대한뉴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홍정표(52) 국립방송 KTV 영상자료실장은 여전히 35㎜ 옛 필름들에 묻혀 살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건씩 1950, 60년대 사회상이 담긴 대한뉴스를 자료화면으로 사용하기 위해 그를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79년 문화공보부에 입사해 줄곧 국가영상제작 관련부서에서 일해 온 그는 '영상뉴스 자료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그의 머리 속에는 KTV의 다른 이름인 국립영상간행물제작소에서 53년∼94년 12월 제작한 총 2040호(주 1회)의 대한뉴스, 53∼98년의 문화영화, 대통령 기록 영상 등 총 4,000여 편, 5만여 캔의 필름 영상자료가 차곡차곡 저장돼 있다.
"5·16을 다룰 때는 대부분 당시 시청 앞에서 박정희 소장이 선글라스를 쓴 채 뒷짐지고 서 있는 모습을 사용하지요. 새마을운동 시대에는 시원하게 뚫린 경부고속도로에 차량들이 질주하는 장면, 베트남 전쟁에는 맹호부대와 백마부대가 나오는 장면을 주로 씁니다."
문서자료와 달리 영상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는 아직 초기 단계. 95년 인명 지명 행사명 등으로 분류한 색인표를 전산화했지만 아직 효율성은 홍 실장의 기억력보다 떨어진다.
"같은 일출 장면이라도 넘실대는 파도 위로 멀리 배 한 척이 지나가고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장면이 제격이죠. 하지만 전산으로 검색하면 이런 장면을 딱 집어 내기가 어려워요. 마감을 코 앞에 둔 사람들에게 원하는 장면을 꼭 집어 찾아주었을 때가 가장 뿌듯해요."
그는 95년 광복 50주년 기록영화 '시련과 영광'을 제작하기 위해 1년 간 대한뉴스, 문화영화는 물론 편집에서 잘려나간 자투리 필름까지 영상자료실의 필름 5만여 통을 죄다 훑었다. 필름 한 롤의 길이가 대략 900피트니 1만3,000㎞에 달하는 분량을 일일이 살핀 셈이다.
53년 '대한―뉴스'를 시작으로 '대한늬우스' '대한뉴우스'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던 대한뉴스는 94년 '권위주의 정권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는 대한뉴스에 대한 이런 평가를 의식한 듯 말을 아끼면서도 아쉬움을 내비쳤다. "독재정치인을 비난하는 것은 마땅하지요. 그러나 국가원수의 동정과 국정활동을 소개한 것에 대해서도 사시(斜視)로 보는 것은 좀 섭섭하더군요."
국립영상간행물제작소는 95년 KTV를 개국, 케이블 방송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올 5월 추억의 장면을 담은 귀중한 옛 필름을 디지털화하는 '국가기록영상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작업에 들어갔다. 홍 실장은 이 작업의 진두지휘를 맡아 요즘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교련복을 입은 까까머리 학생들의 훈련 모습, 일주일에 하루 빵을 먹는 '분식의 날' 모습, 앞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입학식에 참석한 초등학생 등 추억의 장면들을 이제는 집에서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이 완료되는 2005년쯤이면 이제 그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누구나 손쉽게 필요한 영상자료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하는 홍 실장의 얼굴에서는 어떤 아쉬움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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