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딸들아, 이제 엄마는 달라질 것이다. 몸과 마음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엄마 자신도 모르겠구나. 신경질도 자주 내고, 인내심도 사라질 것 같다. 사춘기를 잘 보낼 수 있도록 이 엄마가 배려했듯이, 이제는 너희들이 엄마의 상태를 잘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두렴…." 폐경은 여자에게 대변혁의 시기이다. 생식능력이 사라지고, 신체 내부적으로는 호르몬 변화를 겪게 되면서, 여자는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극심한 감정적 변화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몸과 마음의 고통은 상실감 소외감 외로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이 땅의 600만 여성들이 이미 경험하고 있는 폐경 증세. 폐경은 반드시 두렵고 불행한 것일까. 미국심신의학회장인 크리스티안 노스럽박사는 저서 '폐경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The Wisdom of Menopause)에서 폐경기 여성은 인생의 전환점에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만끽하라고 강조한다. 자녀 양육이나 집안 일의 부담에서 벗어나, 이제는 본인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나이듦의 산물인 '점점 밝아지는 통찰력'을 발휘하며, 인생의 후반기를 자신의 몫으로 살라고 권한다. 폐경에 정면 대응하기 위해 폐경이 가져오는 변화과정을 짚어본다.
왜 폐경이 일어나나
여자는 태어날 때 100만개 정도의 난자를 갖고 태어난다. 사춘기 초경이 시작되면 난소에 약 30만개의 난자가 남게 되며 사춘기 이후에는 매달 수백개의 난자가 소멸되고 가임기에는 단지 450개의 난자가 성숙단계에 도달해 배란을 유발한다. 난소에 보관된 난자는 월경을 통해 난자를 소모한다.
여성의 폐경 시기는 약 만 50세. 폐경기가 되면 난소에는 불과 수백개 정도의 난자만이 존재하는데 이 난자들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포천중문의대 산부인과 안명옥 교수는 "폐경 상태란 더 이상 호르몬 자극이 없어 건강한 난소에서 하던 일을 못하게 되는 상태"라면서 "폐경은 노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게 일반적이지만, 어떤 여성은 자궁절제 같은 수술을 받은 후 인위적인 폐경을 경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난소가 있는 여성의 경우 보통 45∼55세에 서서히 폐경이 진행되나, 일부 여성은 호르몬 치료 없이도 60세가 넘어서야 폐경을 하기도 한다.
폐경 어떻게 일어나나
폐경은 크게 3단계로 나뉘어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폐경 주위기
폐경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증상이 아니다. 폐경 2∼8년 전부터 여성들은 폐경의 전조증상을 겪게 된다. 의학적으로는 폐경 주위기(perimenopause)라 부른다. 평소 월경 전 증후군을 겪었던 여성은 폐경주위기에 상당히 심한 정신적 신체적 폐경 전조 증상을 경험할 수 있다. 온 몸에 열이 나고 얼굴이 화끈 거리는 홍조나 잠자리에서의 식은 땀, 극심한 기분변화, 불안 초조 수면장애 질 건조 요실금 같은 증상들이 나타난다. 호르몬의 상태가 불균형을 이루면서 감정적으로 폭발하기 쉽다.
폐경주위기에 들어서면 월경주기도 불규칙해진다. 월경기간이 평소보다 길어질 수 있으며, 월경량도 증가할 수 있다. 월경량이 한 달은 많고 다음 달은 적어지는 등 불규칙해지며, 생리주기를 건너뛰기도 한다.
폐경주위기동안 임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20대 때처럼 임신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임신을 촉진시키는 여러가지 치료들을 병행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난소에서 점점 더 에스트로겐 분비가 줄어들면서. 대부분 여성은 40대에 이를 겪기 시작하나, 이르면 30대부터 이를 겪을 수도 있다.
폐경주위기 증세는 폐경 2년 정도를 앞두고 더욱 더 심해진다. 보통 4년 정도의 폐경주위기 증상을 호소하는데, 일부 여성은 단 몇 개월만에 이 과정을 끝내기도 한다. 갱년기 증세는 개인차가 커, 어떤 여성은 홍조증상을 8년정도 겪을 수 있고, 어떤 여성은 훨씬 짧게 혹은 더 길게 나타날 수도 있다.
또 모든 폐경기 여성은 리비도(성적욕망)의 감퇴를 경험한다. 이처럼 성적 욕망이 일시적으로 감퇴되는 원인은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감소 때문이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여자의 난소에서 소량 생산된다. 테스토스테론은 여성의 리비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데, 성욕감퇴는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저하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폐경기 이후 여성에게 테스토스테론 수치의 변화는 그리 심하지 않다면서 오히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이 여성의 건강한 리비도를 지탱하는 기둥이라고 주장한다.
폐경기
폐경주위기 증상은 폐경과 더불어 사라진다. 폐경이란 마지막으로 월경을 한 시점을 말한다. 의학적으로는 12개월동안 무월경이 지속되고, 난포자극호르몬(FSH)수치가 40mIU/㎘이상일 때 폐경이라 진단 내릴 수 있다. 난소내 난포의 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면서 뇌하수체에서는 난소를 자극하기 위해 FSH를 더 많이 생성하기 때문에 FSH수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폐경 이후
1년 동안 월경을 한차례도 하지 않는다면 드디어 임신의 공포에서 해방된다. 일단 폐경이라는 정점을 넘어서면 극심한 감정의 변화는 다시 정상을 되찾게 되며, 안면홍조 같은 증상도 훨씬 완화된다. 하지만 낮아진 에스트로겐 수치는 골다공증이나 심장병 유방암 난소암 등의 발생 위험을 높이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건강한 라이프스타일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피임약을 복용해 왔다면 함부로 복용을 중단하지 말고, 반드시 의사와 상의한 후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자궁암이나 유방암 검사 등도 계속 정기적으로 받는 것이 좋다.
남자도 경험하는 폐경 증세
당뇨병 등을 앓고 있는 일부 남자들은 질병 때문에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수치의 감소를 경험한다. 이럴 때 남자들은 피로 우울증 성기능장애 같은 여성 폐경기 증세와 동일한 증세를 호소한다. 물론 여자와 달리 남자의 폐경기는 노화에 따른 자연적인 증세가 아니다.
여자의 성세포가 난자라면 남자의 성세포는 정자. 남자가 건강하다면 정자는 80세 이후에도 얼마든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고환 내에서 성세포가 세포분열을 일으켜 형성되는 정자는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숫자가 약간 감소하기는 해도,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일부 의사들은 심지어 호르몬 치료를 하면 남자들의 갱년기 증세도 완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안교수는 "육체적 심리적 변화 외에 사회적 은퇴까지도 동시에 맞닥뜨려야 하는 남자들의 갱년기는 어쩌면 여자들보다 더 외롭고 힘든 시기로 오죽하면 이 시기의 남자를 '젖은 낙엽'(젖은 낙엽은 불쏘시개로도 사용 못한다)이라 표현하겠는가" 라면서 "여자들이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 듯 남자들도 자신의 중년기 변화를 아내에게 터놓고 지내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평생동지와 서로 나약해진 모습에서 동병상련의 정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yjsong@hk.co.kr
■完經은 여성인생의 수확기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해야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많은 여성들은 완경, 즉 폐경을 맞는다. 여성에게 있어서 완경은 정상적인 노화과정의 일부지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면에서 제2의 사춘기라 부를 만큼 큰 변화의 시기이기도 하다. 청소년기에 겪었던 신체 변화 못지 않은 스케일의 놀라운 변화가 여성의 몸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여성의 갱년기를 두고 인생의 사추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시인들은 단풍과 낙엽에서 가을을 느끼겠지만, 나는 가을하면 풍요로운 수확이 먼저 떠오른다. 지난 봄과 여름에 씨뿌리고 열심히 땀흘리며 일했던 농부는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들이고, 그 수확으로 앞으로의 행복한 1년이 약속된다. 인생도 마찬가지. 열심히 젊은 날을 보냈다면, 수확의 계절만큼 기쁘고 즐거운 시기도 없을 것이다.
나를 되돌아본다. 열심히 젊은 날을 보낸 덕분에 남편도 자식도 확실한 영역을 구축하고, 나의 일에서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지위를 갖게 됐다. 이제 나의 시간을 보낼 차례다. 몸과 마음과 영혼의 지혜를 즐길 때이다. 나이듦의 우아함을 만끽하며….
내 나이 내년이면 쉰. 자식들이 건강히 잘 자라주어 감사하고, 친구와 이웃에 대해서도 따뜻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낀다. 이제 자연도 예사로 안보이고, 과거 힘들게 이겨냈던 슬프고 괴로운 일조차 오늘이 있기까지 치러야 할 과정이 아니었던가 헤아려본다. 나의 얼굴과 몸에, 그리고 마음에도 인생의 지혜가 배어가니 정말 기쁘다. 몸과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기를 바란다. 인생의 가을은 내 영혼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여성의 숭고한 의무였던 월경에서도 곧 해방될 것이다. 완경을 맞이하며, 인생의 독립과 해방을 의미를 곱씹어 본다.
안명옥 포천중문의대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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