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에서는 왜 부모나 왕은 물론이고 누구에게도 절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까?(제자)"절 받는 사람의 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그런 것이다. 도덕과 학문, 지혜가 출중한 이가 절을 할 경우 받는 사람의 복이 줄어든다. 상대방을 위해서지 중이 잘나서 절 못하게 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처지로서는 절을 해도 복이 줄어 들 것이 없다. 아직 깨우친 경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선지식의 경지에서 말한 것일 뿐 범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탄허)
― 겸양(謙讓)이 위본(爲本) 이란 뜻은 무엇인지요?
"주역(周易)의 육십사괘(六十四卦) 중에서 겸괘를 제일 칭찬한 것이다. 겸손은 덕의 자루이니라. 하늘의 도는 찬 것(넘치는 것, 가득찬 것)을 이지러뜨리고, 겸손은 더해 준다. 사람의 도를 보아라. 찬 것(아만이 심하고 교만한 것)을 미워하고 겸손을 좋아한다. 교만과 인색은 동일하다. 인색은 교만의 근본이고 교만은 인색의 지엽이다. 교만하고 인색하지 않은 사람 없고, 인색하고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인색과 교만은 따라 붙는다. 겸양이 위본이라는 말은 유불선(儒佛仙) 삼교가 모두 같다." 탄허의 법문집에 실려 있는 제자와의 문답이다.
판만대장경 속에 무문자설(無問者說)은 없다. 부처는 혼자 얘기하지 않았다. 반드시 질문자의 의중을 헤아려, 그리고 근기에 맞춰 비유를 들어 답했다. 탄허 역시 무문자설을 따랐다. '허공을 삼킨다'는 그의 법호처럼 탄허는 선승이자 학승이요, 철승(哲僧)이었다. 문답에서는 유가와 도가, 심지어 기독교사상까지 방편으로 동원됐다. 탄허의 설법이 듣는 이의 가슴에 자연스럽게 와 닿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불교의 대석학 탄허택성(呑虛宅成·1913∼1983)은 일찍부터 그 천재성을 드러냈다. 그의 부친(김홍규· 金洪圭)은 일제강점기 상하이(上海) 임정주석 백범 김구(金九)의 독립운동자금을 댄 애국지사였다. 탄허는 14세에 유학의 제 경전을 두루 섭렵한데 이어 15세에 대유 이극종(李克鍾) 문하에서 노장사상과 제자백가를 배운다. 그래도 인생과 우주의 근원적 궁금증을 풀 길 없었다. 한암(漢岩)의 명성을 듣고 구도의 편지를 띄운다. 서신 왕래 3년 만에 월정사로 한암을 찾아간다. 22세 때의 일이다. 탄허는 원래 평생 중노릇을 할 생각은 없었던 듯 싶다. 기록에 따르면 '짧으면 3년, 길어야 10년'을 기약했다. 하지만 속가의 처자까지 포기하고 평생 사문의 길을 걸었다.
탄허는 한암의 지도를 받으며 3년간 묵언정진을 했다. 마침내 화엄경을 읽다가 대오(大悟)의 법연을 맞는다. 화엄사상의 축은 이법계(理法界) 사법계(事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의 네 가지 법계다. 그러나 이 도리는 수행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난해했다. 네 가지 법계의 실천도리는 비로소 탄허의 품안에서 활짝 꽃을 피운다. 이법계는 절대진리, 사법계는 삼라만상의 현상을 가리킨다. 이사무애법계는 진리와 현상이 서로 걸림이 없는 것을 말한다. 무엇보다 사사무애법계는 화엄에서 꽃 중 꽃이다.
전문가의 말을 빌려보자. 잔잔한 호수의 수면 위에 낙엽이 하나 떨어지면 그 곳을 중심으로 파장이 일게 된다. 그 파장의 에너지는 호수 끝까지가 아니라 우주의 끝까지 미치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연기(緣起) 속에 현상계가 존재한다. 쉽게 말해 세상의 모든 것은 각자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각각의 역할이 부여돼 있다. 자기 직분을 충실히 이행할 때 전체로서 조화가 이뤄진다. 각종 악기들이 화음을 이뤄야 생명을 갖는 오케스트라나 다름없는 세계가 사사무애법계인 것이다.
탄허는 반야의 눈을 뜬 뒤 화엄경 번역과 연구를 필생의 으뜸 목표로 삼았다. 화엄경 번역은 20세기의 대장경조성 불사였다. 화엄경 원전 80권과 이통현(李通玄·중국 당시대의 거사, 화엄학의 달인)의 화엄론 40권 등 화엄학 저술 286권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대불사였다. 61년 착수, 10여년에 걸친 역경불사는 200자 원고지 10여만장 분량에 달했다. 드디어 74년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의 이름으로 47권의 결실을 세상에 내놓았다.
대승불교는 자비, 지혜, 원력의 삼륜이 핵심사상이다. 개인의 깨달음에 머물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다. 문수는 지혜, 관세음은 자비, 보현은 원력이 으뜸인 보살이다. 탄허는 보현의 화신이나 다름 없었다. 보현보살이 모든 중생의 교화와 제도를 사명으로 삼았듯이 탄허는 화엄경의 번역으로 중생에게 가없는 법우(法雨)를 뿌려주었다. 탄허의 법기(法器)는 한량이 없었다. 유불선을 아우르는 삼교회통(三敎會通)의 경지에까지 나아갔다. 탄허가 추구한 '큰 공부'인 것이다.
"유교가 뿌리를 심는 것(儒植根·유식근)이라면 도교는 뿌리를 북돋아주는 것(道培根·도배근)이요, 불교는 뿌리를 뽑는 것(釋拔根·석발근)이라 했다." 탄허가 불교의 우위를 설명하기 위해 한 말은 아니다. 유불선의 특징을 석자의 화두로 정리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탄허는 사람의 마음을 육단심(肉團心) 연려심(緣慮心) 집기심(集起心) 견실심(堅實心)의 4가지로 분류한다. 육단심은 육체적 생각에서 우러나오는 마음, 연려심은 보고 듣는 분별심에서 내는 마음을 가리킨다. 집기심은 망상을 내는 속마음이다. 견실심은 불성(佛性)으로서 부처의 마음자리다. 참선은 견실심을 보는 공부이자 쓰는 도리이다. 그래서 탄허는 선은 만법의 근본이 되고 불교의 핵심이 된다고 가르쳤다.
"어떤 지도자가 새로 등장하면 민중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가. 우선 그 지도자가 우리를 이롭게 할 것인가, 그 다음에는 우리를 편하게 해 줄 것인가, 마지막으로 우리를 올바로 이끌 것인가 하고 기대를 한다. 그 해답은 전부 동양사상에 들어 있다." 공산주의는 평등을 구실로 인권을 희생시키는 모순을 저질렀다. 탄허는 공산주의의 몰락의 원인을 이렇게 예언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빈부격차의 해결 방안을 동양사상에서 찾으라고 일렀다.
"갑자일(甲子日) 계시(癸時)를 못 미칠 것 같다." 83년 6월2일 탄허는 병실을 지키던 시자와 문도에게 이 말을 하면서 한양대병원을 나와 월정사로 돌아갔다. 입적일을 6월6일 새벽으로 예언한 것이었다. 제자와 문도 30여명이 5일 월정사에 모여들었다. 스승의 입적을 지켜보기 위해서 였다. 물론 예언이 맞는지도 궁금했을 것이다. 탄허는 스스로 밝혔던 갑자일 계시를 몇 시간 앞당긴 5일 오후 6시15분 열반의 길을 떠났다. "일체무언", 이 마지막 말을 뒤로 하고.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
■60년대 지구온난화·日침강등 동양사상 토대 탁월한 예지력
― 미국은 베트남에서 반드시 패배한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미국의 핵무기 한 방이면 월맹은 꼼짝 못할 텐데."
탄허가 65년 미국의 패배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자 미국에서 포교를 하던 종단의 한 중진스님이 항의성 질문을 보내왔다. 미국이 막 확전정책을 펴던 시점이었다. 탄허는 역학원리를 토대로 예언을 한 것이다. 베트남은 이방(離方), 곧 남쪽인데 이는 불(火)로 푼다. 미국은 태방(兌方)으로 쇠(金)이다. 쇠가 불속에 들어갔으니 녹을 수 밖에 없다. 화극금(火克金)에 해당하는 원리다. 탄허의 예지력은 탁월했다.
탄허는 60년대 지구의 온난화와 일본열도의 침강을 말했다. 지구에 잠재하는 화질(火質)이 북극의 빙산을 녹이기 시작한 것을 지구의 규문(閨門)이 열려 성숙한 처녀가 되는 과정이라고 비유했다. 그리고 지구의 초조(初潮) 현상은 소멸이 아니라 성숙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학계는 '허튼소리'라고 무시했다. 그러나 대학총장을 지낸 한 학자는 일본 방문길에 그 예언이 실현되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고 탄허 앞에서 참회했다. 한국전쟁 직전 탄허는 월정사에서 통도사로 피란을 떠났는가 하면 60년대 후반 울진·삼척 지방에 무장공비가 침투하기 한달 전에는 '신화엄경'의 번역원고와 장서를 월정사의 한 암자에서 은영사로 옮기기도 했다.
탄허는 23도7분 가량 기울어진 지구축이 바로 잡히는 날이 올 것을 예언했다. "그날이 오면 기울어진 윤도수(閏度數)로 말미암아 빚어진 인간사회의 부정부패와 각종 비리가 없어진다. 윤달과 윤일이 생기는 이치를 윤도수라 한다. 이는 중간매체, 즉 과도기로 이 중간매체야 말로 부정부패의 원인이자 부조리의 근원이다."
"개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장마를, 낮은 곳으로 가면 심한 가뭄을 알려주는 것이다. 까치가 집을 지을 때 남쪽으로 입구를 내면 북풍이 강하게 불 것이고 북쪽으로 입구를 내면 남풍이 강하게 불 것을 의미한다. 동물도 예지본능을 갖고 있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탄허는 인간의 예지본능은 계발하기만 하면 무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양사상의 토대 위에 역학을 동원한 탄허의 예언은 결코 매명(賣名)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의 예언이 통일에 이어 다음 세계의 주축은 한국이라는 데 귀착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연보
1913.1.15. 전북 김제 출신, 속성은 경주 김(金)씨
1936.9. 5 오대산 월정사에서 한암을 은사로 출가,
법호는 탄허, 법명은 택성
1960. 육조단경 번역 출간
1966 동국대 선학원장
1969 대전에 자광사 창건
1974 신화엄경합론 전 47권 간행
1975 인촌문화상 수상
1983.6.5. 월정사 방산굴에서 세수 71, 법랍 47세로 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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