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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66>능소화와 꽃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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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66>능소화와 꽃가루

입력
2003.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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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꽃이 한창입니다. 요즘 제 연구실 밖으로 나오면 건너편 건물의 돌벽 가득히 주렁주렁 달려 있는 능소화 꽃송이들이 얼마나 고운지 번번이 발길을 멈추게 됩니다.능소화가 더욱 반가운 것은 제가 제 딸 아이 만한 나이 때 우리집 마당에서 보던 추억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홍빛 꽃들이 꽃잎도 상하지 않은 채 뚝뚝 떨어져 버리면 어린 마음에도 그 꽃이 아까워 마음을 죄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리집 능소화는 여러 사람들이 탐을 내 큰 집과 이모댁은 물론 이웃집에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세월과 그 속의 사람들, 그리고 능소화는 지금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능소화가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능소화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실명한다는 말이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집 앞이나 공원에 심어져 있던 능소화를 뽑아 버리려고 합니다.

꽃요정들의 나팔 같은 능소화 꽃은 다섯 갈래로 벌어지며 그 속에 한 개의 암술과 네 개의 수술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노란 수술은 끝이 휘어져 있죠. 여기에 달리는 아주 미세한 꽃가루에는 갈고리 같은 것이 있습니다. 사실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물론 먹으면 영양식이 되지만요). 더욱이 능소화 꽃가루가 갈고리 같이 생겨서 사람들이 더 겁을 먹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갈고리라고는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흉물스러운 것은 아니며 1,000배 이상의 배율을 가진 현미경으로나 봐야 보일 정도입니다.

더욱이 지금까지 이 나무의 꽃가루가 문제 되어 눈에 이상이 생겼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주의를 하면 될텐데, 아예 이 나무를 없애 버리겠다고 온 나라가 들썩이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각각의 식물은 겉모습만 차이 나는 것이 아니라 맨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꽃가루들의 모양과 표면의 무늬마저도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식물분류학자들은 이러한 꽃가루를 전자현미경으로 보고 식물의 계통을 따져보는 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조금 엿보아 알고 있는 식물의 세상은 지구차원으로 크게 보아도, 현미경 속에서 아주 작게 보아도 참으로 심오하며 언제나 새롭습니다.

능소화의 별명은 '양반꽃'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이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서만 심을 수 있어, 혹 일반 백성의 집에서 이 나무가 발견되면 관가로 잡혀가 곤장을 맞았다는 얘기도 있지요.

한 여름, 늘어진 꽃자루에 등을 대고 목에 한껏 힘을 넣어 나팔을 부는 것처럼 싱싱하게 고개를 쳐들고 피어나는 능소화 꽃들. 바람이 불고 비라도 몹시 내리면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이 능소화 꽃송이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사람, 그 나팔을 닮은 꽃들이 불어내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시대의 양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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