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제2의 플루토늄 제조시설을 비밀리에 가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미 정보 당국의 판단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더욱 복잡한 상황으로 몰고 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영변의 플루토늄 제조시설과 다른 곳의 우라늄 제조 추정 시설에 국한된 지금까지의 북한 핵 문제 논의의 범위가 북한 내 제2, 3의 핵 시설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특히 이 새로운 정보를 전한 뉴욕 타임스의 지적대로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해 "의심은 가지만 결론을 낼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이 이어지면 미 정부의 대응도 한층 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북한이 지하에 핵 시설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어 왔지만 그 실체가 드러난 적은 한번도 없다. 미국이 지하 핵 시설로 꼽아 사찰을 시도했던 금창리 시설은 빈 동굴로 판명됐다.
이번의 경우에도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만큼이나 북한의 또 다른 핵 시설 유무뿐 아니라 미측의 정보 판단 자체에 모호성이 가득하다. 또 다른 핵 재처리시설이 있을지 모른다는 근거는 미 군사정보당국이 얼마 전 휴전선 부근에 설치된 센서로 확인된 크립톤 85의 진원지를 추적한 결과 영변 핵 재처리 시설은 제외되는 것 같다는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핵 연료봉을 재처리할 때 생성되는 크립톤 가스는 핵 재처리 징후로 간주되며 미 정보기관들이 냉전시대부터 사용해온 센서에 의해서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크립톤 검출로 진원지를 특정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러시아의 대표적 핵 연구소인 쿠르차토프 연구소측은 최근 "한반도 하늘에서 크립톤 85 가스가 검출됐다면 그것은 사용 후 핵 연료봉을 사용하는 원자력 발전소들이 있는 러시아 극동지방에서 유입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크립톤 검출만으로 본격적인 핵 재처리 과정에서 나온 것인지, 실험에 따른 배출인지를 판단하기도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북한 당국이 미 정보기관을 속이기 위해 영변이 아닌 장소에서 연료봉을 감싸고 있는 금속 박피를 초산으로 제거하는 작업을 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해 "뭔가 놓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미 정보 당국의 우려는 대 북한 고사(枯死) 정책을 강조하는 조지 W 부시 정부 내 매파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쪽으로 작용할 것 같다. 북한이 제2, 제3의 핵 시설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의혹은 북한이 체제보장의 유일한 카드인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과 맥락이 닿는다.
뉴욕 타임스는 "특히 국방부의 몇몇 관리들은 북한과의 협상이 결국 아무 소득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 크립톤 85란
크립톤(Krypton) 85는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해 연료봉의 피복을 벗기거나 잘게 절단해 초산으로 녹일 때 기체로 방출된다. 이 원소는 자연상태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의 대기 중에 크립톤 85의 농도가 높아졌다면 재처리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이 가스는 공기보다 3배나 무거우며 바람이나 확산에 의해 서서히 희석된다. 크립톤 85의 존재 여부는 현장주변의 대기시료를 분석하면 간단히 알 수 있다.
시료 없이 첩보위성이나 고공 정찰기에서 자기광학포획법 등을 통해 대기중의 에너지 변화를 감지함으로써 포착하는 방법도 있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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