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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규의 세상읽기 / 사생활 묻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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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규의 세상읽기 / 사생활 묻는법

입력
2003.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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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하면 예절도 따라 변해야 한다. 너무 당연한 얘기다.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이 논리가 막상 몸에 배지 않으면 나처럼 계속 결례를 저지르게 된다.몇달전 겪은 경험담. 업무 관계로 명함을 주고 받은 30대 초반 남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결혼은 하셨죠?" 예전같으면 답은 두가지중 하나다. "예, 아이도 있는걸요", 아니면 머리를 긁적이며, "아직 못했습니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

내가 들은 대답은 이랬다. "예, 결혼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이혼남이라는 얘기다.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해 준 덕분에 그냥 넘어갔지만 두고두고 얼마나 낯이 뜨거웠는지.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초면에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

이런 일을 한두달 사이에 두 번이나 겪고 나서도 버릇을 못 고친 나, 얼마전 어떤 여성에게 또다시 결혼 여부를 묻고 말았다. 돌아온 답변은 아주 명쾌했다. "했다가 아닌 것 같아서 금방 물렀어요". 아, 나의 이 못말리는 남의 사생활 밝힘증이여.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된 후엔 또 아이가 몇이냐를 묻게 된다. 별 뜻은 없다, 그냥 이것저것 물어보며 서로의 친분을 다지자는 것 외에는. 그런데 요즘엔 결혼은 했어도 '아이는 노'라는 커플도 많고, 아이가 안 생겨 두 부부만 사는 가정도 의외로 많다.

치솟는 이혼율, 늘어나는 노키드(no kid) 커플에 대한 뉴스를 늘상 접하면서도 내 감각은 여전히 결혼과 미혼의 이분법, 가정은 엄마 아빠와 아이 둘, 식의 고정관념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면 사실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떠오른 강금실 장관은 이혼녀에 아이도 없다. 그러나 그걸 특별히 의식하거나 문제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재혼 가정도 많이 늘어서 새 엄마, 새 아빠와 함께 크는 아이들의 성(姓)씨를 무엇으로 하느냐가 사회 이슈로 떠올라 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에티켓 북을 보면 모르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족간의 예절이 아주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새 남편(혹은 아내)의 아이들, 그 전 배우자들, 새 결혼으로 인해 인척이 된 사람들끼리의 관계에 대해 매우 실질적인 조언 등등. 가족의 형태가 천태만상인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리라.

올 여름 최대 흥행작이라는 '장화 홍련'은 새엄마와 두 딸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남들에겐 재미에 불과한 이런 설정이 늘어나는 재혼가정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함께 해 본 생각이다.

/자유기고가·boring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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