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절 인구문제만큼 우리 마음을 압박한 것도 없었으리라. 살기는 어려운데 사람은 폭발하듯 늘어 정부는 인구증가 억제에 온갖 아이디어를 쏟아 부었다. 정관시술 같은 가족계획 참여자들에 대한 여러 가지 혜택들은 지금도 웃음을 자아내는 쑥스러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좀 살만해 진 탓인지, 슬그머니 그 걱정을 놓게 되었다. 그러나 인구문제는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우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인구구조가 노인 쪽으로 쏠려가고 있어 노인봉양에 국력을 크게 잠식 당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겨나고 있다.■ 세계 인구의 날(7월11일)을 맞아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현황 자료를 보면 2002년 한국여성의 합계 출산율(TFR)은 1.17명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낮을 뿐 아니라, 최근 30여년 동안 선진국 인구 통계상 최저수치다. 1995년 이탈리아가 1.19명을 기록한 이래 1.1명 대 기록이 없다. 자녀 둘 낳기 운동이 시작되기 직전인 1970년의 출산율(4.53명)과 비교하면 32년 동안 무려 3.36명이 줄었다. 더 무서운 것은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 결혼기피와 만혼 풍조, 이혼율 증가 등의 요인으로 출산율은 계속 줄어들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 출산율 저하와 수명연장은 인구분포 곡선을 왜곡시킨다. 2000년을 기점으로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2019년이면 '고령사회'에 들게 되고, 2026년이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이것도 세계기록이 될 것이라 한다. 한국이 65세 이상 인구비율 7%가 넘는 고령화 사회에서 14%가 넘는 고령사회로 가는데 걸리는 기간은 19년으로 예측된다. 일본은 24년이 걸렸고, 구미 선진국들은 대부분 60년 이상, 프랑스는 무려 115년이 걸렸다. 계속 늘어나는 평균수명과 떨어지는 출산율 때문에 더 단축될지도 모를 일이다.
■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우스갯소리에 가려진 고령자 퇴출의 비극과 고령화 사회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음은 우리 모두가 청맹과니란 뜻인가. 지금 풍조대로라면 젊은이들도 10년 또는 20년 뒤면 같은 고민을 안게 될 것이다. 좀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일할 수 있을 때 더 노력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유익한 법이다. 일은 적게 하고 월급은 깎지 말라는 노조의 요구를 사측이 수용한 금속산업의 주5일 근무제 합의 소식은 좀 성급하지 않나 하는 느낌을 준다. 생산성 없는 노인 공화국 시대가 온다는 예고에 언뜻 떠오른 단상이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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