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요. 예전의 딱 절반이죠. 그나마 사는 사람은 그 중 반의 반쯤 될까‥"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나진상가 2층 컴퓨터 전문매장. 50여개의 점포가 길게 늘어선 상가 복도는 주말 오후인데도 한산했다. 대학생 차림의 손님 서너 명이 두리번거리는 데도 직원들은 별 관심이 없는 듯 TV만 보고 있었다. L매장 최모(38) 사장은 "붙잡아 봐야 값이나 물어보는 게 고작인데요"라며 "대부분 최저가를 알아보고 오기 때문에 10만원짜리 하나 팔아봐야 3,000∼4,000원 남기기가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 놓았다.
서울 용산전자상가가 위기를 맞고 있다. 전반적인 IT업계 침체와 신유통 채널의 등장으로 용산상가 입점 업체들이 최악의 불황에 직면해 있다. 올해 들어 그나마 버텨주던 내수까지 위축되면서 문을 닫는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용산전자상가는 불과 3년여 전까지만 해도 국내 '전자·가전 시장의 메카'로 통했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 쇼핑몰과 TV홈쇼핑이 컴퓨터 등 전자·가전 제품의 새로운 유통 채널로 자리를 잡고, 대형 할인점과 테크노마트, 하이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들까지 영역을 확대하면서 전자 도매상가로서 용산전자상가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용산상가 초입에 위치해 최고 요지로 꼽히는 선인상가는 현재 1,700여개의 점포 중 200여개가 휴·폐업 상태다. 예전 같으면 점포가 나오기 무섭게 새 주인이 들어섰지만 지난해부터는 입주 신청자가 거의 없다. 인근 S부동산의 서모(49)씨는 "100만원 하던 월세가 40만∼50만원으로 내렸는데도 문의가 없다"며 "용산 생활 10년 동안 이런 불황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남아 있는 점포간의 살아 남기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 지고 있다. 용산전자랜드에서 음향기기 매장을 운영하는 김명규씨는 "월세 내기도 힘들다 보니 점포마다 출혈 판매가 심각하다"며 "제살 뜯어먹기식 경쟁을 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용산을 찾는 손님들은 거의 전문가 수준의 정보를 갖추고 있어 5% 마진 남기는 것도 버겁다"고 말했다.
용산상가의 추락은 신유통의 등장과 관계가 깊다. 인터넷 홈쇼핑과 TV홈쇼핑이 제조사와의 직거래를 통해 중간마진을 최소화한 직접 유통에 나서면서 저가 판매라는 용산전자상가의 장점은 크게 희석됐다. 여기에 할인점 등 대형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대대적인 홍보·마케팅과 쇼핑 편의성을 앞세워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잠식한 것. L전자 관계자는 "용산상가의 불황으로 제품 공급량이 줄면서 납품단가도 자꾸 올라가 판매부진과 공급가 상승이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용산상가의 구조적 문제를 꼬집었다.
그럼에도 용산전자상가는 여전히 제조사, 총판, 도매상, 중간도매상, 소매상 등 4∼5단계의 복잡한 유통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낮은 마진을 만회하기 위한 일부 상인들의 바가지 상혼이 상가전체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마저 떨어뜨리고 있다.
이곳 상인들은 "2005년 완공되는 고속철 민자역사에 새 상가가 들어설 예정인데 그 때 용산전자상가는 완전히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용산전자상가는 요즘 뒤늦게 영화관, 음식점 등 쇼핑 연관 시설의 유치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 여의치가 않다. 용산전자랜드 상인 이모(40)씨는 "영화관과 패스트푸드 점이 생겼지만 파리 날리기는 마찬가지"라며 "상가 리노베이션, 홍보 활동 강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