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급쟁이로 사회에 발을 내디딘지도 벌써 30년이 흘렀다. 1973년 대학을 졸업한 나는 당시 공대생의 자연스러운 진로였던 기업체 공장 대신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KIST)를 택했다. 강산도 변한다는 만 10년 동안의 연구소 생활을 통해 가정도 안정을 찾았고 일에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10년 동안 고요하기만 하던 수면은 83년 봄에 이르러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그 해 3월 삼성물산으로부터 신규사업팀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소식을 들은 주위의 반응은 반대 그 자체였다. "기업체란 냉혹해서 단물만 빼먹고 쫓아낼 것"이라는 둥 "혹사시키기 때문에 체력이 못 버텨낼 것"이라는 둥 반협박성 조언도 끊이지 않았다. 물론 아내의 반대도 완강했다. 10년 동안 지켜온 안정이 흔들릴 수 있는 순간이니 어련했겠는가.
그러나 내 마음은 "기업이란 노력한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이라는 선배의 조언에 결정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인생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나갔다. 장래의 내 모습을 생각할 때, 안정적인 일자리에 안주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발전할 수 있는 일자리에 도전하는 것이 좋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연구소는 생각할 여유를 가지라며 석 달간의 유럽연수까지 배려해주었다. 그러나 한번 흔들린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파장이 커져 가기만 했다. 결국 안정과 도전 사이에서 거듭된 고민은 무려 7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도전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
신규사업개발이라는 업무 성격 탓이기도 했겠지만, 20년에 가까운 삼성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벤처 비즈니스를 비롯해 정보통신 및 방송사업, 홈 비디오제작, 케이블TV 영화채널 개설, PCS 등에 관여하며 시장진입을 위해 애썼고, 마지막으로 미디어 콘텐츠 사업을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2001년 8월, 새로운 선택이 다시 찾아왔다. 정부로부터 문화콘텐츠 산업 진흥에 참여해달라는 제안 받은 것이다. 나는 지난 세월의 노력이 공적으로 인정 받은 것 같아 기뻤고, 중년에 접어든 나이에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감사했다. 지난 20년 전 선택의 기로에서 그렸던 밑그림이 자그맣게나마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 청년 실업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선택할 때 인생의 큰 밑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당장의 어려움을 모면하는 데 급급한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일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부디 우리 젊은이들이 당장의 어려움에 매몰되지 말고 보다 대범하게 작금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길 바란다.
서 병 문 한국 문화콘텐츠 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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