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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 발라뒤르 "잔다르크와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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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 발라뒤르 "잔다르크와 프랑스…"

입력
2003.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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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1412∼1431)는 나폴레옹과 더불어 프랑스 역사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순국한 여인들의 대명사로 우리도 유관순 열사를 '한국의 잔다르크'라고 부르며 프랑스의 잔다르크 박물관에는 유관순 열사가 외국의 잔다르크의 하나로 소개돼 있다.14세기 말,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난한 농가의 딸로 자란 17세 소녀 잔다르크는 프랑스 왕을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는다. 그는 영국의 헨리 6세에게 계승권을 빼앗긴 샤를 7세를 방문, 군대의 우두머리가 되어 영국군을 격파하고 당시 전례에 따라 렝스 시에서 샤를 7세의 대관식과 축성식을 치러 왕위를 잇게 한다. 그러나 왕의 측근들의 시기와 그들과 결탁한 교권에 의해 마녀로 낙인 찍혀 19세에 화형대에 선다. 죽음 이후 곧 숭배 대상이 된 그는 수 세기에 걸쳐 문학작품의 소재가 됐고, 영화만도 19세기 말 무성영화 시대에서 최근까지 무려 20여 편이 만들어졌다.

최근 출판된 '잔다르크와 프랑스, 구세주의 신화'는 1993∼95년 총리를 역임한 국회의원 에두아르 발라뒤르가 썼다. 이 책은 잔다르크에 대한 각 시대의 평가를 통해 프랑스를 어려움에서 구한 다른 역사 인물들과의 차이를 분석하고 그가 프랑스의 상징임을 보여준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잔다르크는 나라를 구해내는 구세주의 신화를 낳았고, 프랑스는 신에게 선택 받은 나라라는 선민의식을 심었다. 중세 신앙을 비판한 계몽주의 시대 철학자들은 잔다르크 신화가 권력의 조작에 불과하다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19세기 들어 잔다르크 숭배사상이 부활, 혁명파와 낭만주의자들은 그에게서 애국주의와 예수의 수난을 읽는다. 특히 1870년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대패한 후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기까지 잔다르크는 가톨릭, 공화주의자, 왕정주의자, 사회주의자 모두로부터 프랑스의 수호 성녀로 추앙받는다.

왕정주의자들은 샤를 7세의 축성식에서 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공화파들은 애국정신을, 시민들은 교권에 저항하는 시민권의 승리를 본 것이다. 1920년 교황청에 의해 성녀로 시성된 잔다르크를 위해 프랑스 정부는 매년 5월 둘째 일요일 추모식을 올리며 극우파는 이날 성녀의 초상을 들고 행진한다.

에두아르 발라뒤르는 시대와 당파, 그리고 국가를 초월하는 잔다르크의 보편성을 드러내면서, 그녀는 역사를 통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온 프랑스의 상징이라고 강조한다. 21세기는 정신 문화의 싸움임을 확신하며 프랑스는 인류 앞에 문화, 사회, 윤리적 이상의 구현이 되어야 함을 촉구하는 것이다.

조 혜 영 재불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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