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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공사현장 가스 질식 함께 참변/"아버지 걱정하던 孝子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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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공사현장 가스 질식 함께 참변/"아버지 걱정하던 孝子였는데…"

입력
2003.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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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가난의 굴레가 없는 곳에서 꼭 네 꿈을 이루거라…, 동현아…." 18일 서울 강남구 강남병원 301호 영안실. 일을 나갔다가 '불귀의 객'이 된 남편 신해균(47·서울 노원구 공릉동)씨와 아버지 일을 도우려다 꽃다운 삶을 마감한 아들 동현(17·서울 M산업과학고2)군의 영정 앞에서 어머니 최은자(44)씨는 흐느끼고 또 흐느꼈다.최씨는 "집안 형편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었던 아들은 싫은 내색 없이 실업계 고교진학을 자청했었다"며 "'치과 기공사가 꿈'이라며 '하루 빨리 대학에 가겠다'고 말할 땐 너무나 대견스러웠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최씨는 IMF 위기 때 남편이 운영하던 작은 설비업체가 부도가 나 억대의 빚더미에 앉으면서부터 아들에게 늘 미안함을 갖고 있었다. 남편은 건설 현장 일용직, 자신은 식당 일을 하며 아들을 제대로 돌봐줄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안 사정이 조금씩 나아졌지만 재작년 고교 진학을 앞두고 아들은 "자동차 공부를 하고 싶다"며 실업계 고교를 지원했다. 3년 전부터 소음방지 공사를 하는 아버지가 공업용 본드의 유독 가스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팔과 머리를 다친 적이 몇 차례. 이를 보다 못한 아들은 휴일이나 방학 때면 틈틈이 아버지가 짊어진 짐을 덜겠다며 공사현장을 따라 나섰다.

제헌절 휴일인 전날 아침에도 아들은 "집에서 공부나 하라"는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굳이 따라 나섰다. "일감이 없는 불경기 때라 한 곳이라도 빨리 끝내야 다른 일감을 찾을 수 있다"는 게 동현이가 따라나선 이유였다.

신씨 부자는 빨리 일을 마치고 돌아간다는 욕심에 충분한 휴식도 없이 오전 9시30분께부터 공업용 본드를 이용, 소음 방지용 칸막이를 벽에다 고정시키는 공사를 오후 2시까지 계속했다.

얼마나 일을 했을까. 점점 의식이 몽롱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두 사람은 의식을 잃고 말았다. 현장을 둘러본 경찰 관계자는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뿌연 가스가 차 있는 지하실에 부자가 엎드려 있었다"고 말했다.

빈소에 모인 친인척들은 가정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던 와중에 터진 비극에 모두 눈물을 훔쳤다. 악착 같이 일한 덕에 신씨 부부는 비록 20여평짜리 빌라지만 내집 마련에도 성공했고, 딸(19)이 대학에 합격하는 기쁨도 누렸다. 방학을 하루 앞둔 M산업과학고는 이날 깊은 슬픔에 잠겼다. 동현군의 친구 임지환(17)군은 "손재주가 유난히 뛰어났던 동현이가 치과 기공사가 되기를 바랐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담임교사 권의택씨는 "지난 4월 동현이 어머니와의 면담에서 '동현이 성적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 대학에 가게 되면 아낌없이 지원해주겠다'고 약속 했었다"면서 "성격이 밝아 친구가 유난히 많았던 동현이의 빈자리가 유달리 커 보인다"고 흐느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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