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어머니가 자녀를 고층 아파트에서 던진 뒤 자신도 목숨을 끊는 등 생활고를 비관한 자녀 동반자살 사건이 잇따라 우리 사회를 깊은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특히 경기불황의 늪이 깊어지고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심화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 온 계층의 가족들이 죽음을 택하는 '비극의 시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최근 발생한 가족 동반자살 사건의 주된 동기는 경제적인 문제. 17일 인천에서 자녀와 동반자살을 택한 손모(34·여)씨 역시 생활고 때문에 쌓인 3,000만원의 카드 빚에 시달리다 극한 방법을 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 명이나 되는 자녀를 돌보느라 마땅한 직장도 찾지 못했으며 1만,2만원이 없어 아이들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했던 궁핍이 결국 죽음으로 내몬 셈이다. 지난달 말 충남 태안군에서 부인의 카드 빚 5,000만원 때문에 고민하던 30대 가장이 두 딸을 살해한 뒤 자살을 기도했다가 중태에 빠진 사건 역시 가난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한 동반자살이 한때 사회적 문제가 됐지만 최근에는 생활고를 비관하거나 카드 빚에 내몰린 저소득층의 가족 동반 자살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IMF 경제위기 직후인 1998년 1만2,458명이었던 자살자 수는 99년 1만1,713명, 2000년 1만1,794명으로 다소 주춤했다가 경기침체가 심화한 지난해 1만3,055명으로 급증했다.
연세대 의대 정신건강 병원장 이홍식 교수는 "부모가 자신만 죽을 경우 살아남은 자녀들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고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같은 죄의식을 없애기 위해 동반자살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생활고 때문에 가족 동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한국식 가족제도 특성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수직적인 한국 사회에서 자녀들은 아무런 인식도 갖지 못한 채 부모의 손에 끌려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조한혜정 교수는 "부모들이 먼저 죽을 경우 자녀들을 대신 돌보던 전통적인 친척들의 지원 관습이 사라진 것이 가족 동반 자살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사회 안전망 확충과 가족제도 전반에 대한 재점검, 국가 차원의 자살 예방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한혜정 교수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자치 공동체를 만들고 부모가 사고를 당해도 자녀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 인프라를 구축해야 비극적인 가족 전체의 자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홍식 교수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의 위기를 관리할 수 있고 현실이 더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자살 예방 복지제도와 함께 경제적 빈곤층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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