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규 지음 한길사 발행·1만2,000원멀리 아프리카로 눈을 돌려보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미개, 가난, 질병, 굶주림, 에이즈, 동물의 왕국…. 우리에게 알려진 아프리카의 모습은 대체로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인류학자 장용규(39·사진)씨가 실제로 공부하고 경험한 아프리카는 화석으로 굳어버린 과거가 아니라 펄펄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땅이었다. "그들은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 다만 조금 다를 뿐이다. 그 '다름'은 외부의 시선에 의해 왜곡·과장·폄하됐다."
'춤추는 상고마'는 그렇게 굳어버리고 비틀린 시선을 바로잡는 책이다. 남아프리카 줄루족의 주술사인 '상고마'를 통해 아프리카 문화 읽기를 시도한 이 책은 한국인이 쓴 아프리카 민족지 1호다. 1996년부터 3년간 남아프리카공화국 크와줄루 나탈 주의 작은 마을 에우투구제니에서 현지 조사한 내용을 담았다. 아프리카를 다룬 국내 출판물이 별로 없고 번역서 아니면 여행기나 개괄적인 통사가 주류를 이루는 상황에서 우리 학자가 아프리카 현지 깊숙이 들어가서 건져온 본격적 민족지가 등장했으니 일단 반갑다.
책은 에우투구제니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소개하고 그곳 종교 현상의 핵심인 상고마를 살핌으로써, 아프리카의 오늘을 바라보는 눈을 제공하고 있다. 딱딱한 이론적 설명을 뺀 채 잔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풀어 썼기 때문에 한 편의 소설처럼 수월하게 읽히는 것도 장점이다.
상고마는 혼령의 힘을 빌어 점을 치고 환자를 치료하기도 하는, 우리 나라 무당과 비슷한 존재다. 특히 움타가티(악마)를 찾아내 처벌하는 힘을 갖고 있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다. 주민들은 마을에 나쁜 일이 생기면 악마의 짓이라고 여겨 상고마를 찾는다.
상고마는 남아공 사회에서는 시대착오적 미신 또는 악습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런데도 상고마 업은 갈수록 번창하고, 휴대폰과 자동차를 갖추고 고객을 찾아 기동성 있게 움직이며 자본주의 물결을 타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채 격변하는 아프리카의 모습은 에우투구제니에서도 드러난다. 주민들은 조상 숭배와 마녀 사냥, 주술 등 전통적 관습을 중시하면서도 백인들처럼 아침은 빵과 홍차로 때우고, 더워 죽겠다면서도 뜨거운 양철 지붕의 서양식 벽돌집에 살고 싶어하며, 도시로 돈 벌러 나가는 데 열중한다.
"에우투구제니에 처음 들어간 1996년만 해도 그곳은 조용하고 외진 시골이었죠. 하지만 97년 관광단지 개발에 맞춰 외부 자본이 들어오면서 빌딩이 들어서는 등 하루가 다르게 변모, 강도·강간 등 범죄와 매춘이 늘고 빈부격차도 커졌습니다."
에우투구제니 사람들은 동양인도 '움룽구'(백인)라고 부르는데, 지은이는 이 마을에 들어와서 산 최초의 움룽구로 호기심의 대상이 됐고 나중에는 '움가네'(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흔히 원색과 야만성으로 통하는 아프리카의 원시성은 서양이 만들어낸 오리엔탈리즘의 변종이자 현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문화코드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문화는 서로 다를 뿐이며, 그러한 차이가 어느 것이 더 낫다고 차별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피부색과 사는 모습이 다를 뿐 그들도 우리와 똑 같은 인간입니다. 극히 당연한 사실이지요. 그런데도 그들도 청바지에 T셔츠 입는다고 말하면 재미있어 할 만큼 아프리카를 보는 눈은 부정적 이미지로 굳어져 있습니다. 21세기의 다원주의 사회에 살면서도, 사고방식은 흑인을 열등하다고 보던 19세기 서구 진화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그런 편견을 깨뜨리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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