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된 노인 A씨는 발바닥이 화끈거리는 고통으로 도통 걸음을 걸을 수가 없다. 수년간 병원을 전전하며 각종 검사도 받고 약도 먹었지만 딱히 원인도 밝혀지지 않고 증세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나마 처방받은 간질약을 먹으면 통증이 덜했지만 어지러움이 심해 복용을 계속할 수 없었다. A씨를 진단한 통증의학 전문의는 A씨가 수십년간 술을 마셔 신경계의 이상을 초래한 것으로 보았다.이처럼 만성 통증은 현대의학에 손쉬운 대상이 아니다. 질병이나 외상으로 열, 염증, 통증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체의 자연스러운 방어작용이며, 진통제 몇 알로 간단히 해결된다. 그러나 통증이 만성화해 그 자체가 견디기 어려운 병이 된 경우엔 "차라리 죽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A씨처럼 말초신경이나 중추신경의 이상으로 인한 신경병증성 통증은 강력한 진통제에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 게다가 오랜 통증은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동반하기도 한다.
약물이 안 듣는 통증환자에게 마취통증의학과에서 주로 시술하는 치료법은 신경차단술과 파괴술. 우리 몸의 다양한 신경계에 대해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작용을 마취시키거나 절제하는 것이다. 각종 두통, 삼차신경통과 같은 안면통, 어깨의 통증, 대상포진 후 신경통, 돌발성 난청 등에 효과가 있다.
너무 많은 진통제에 의존하지 않고 통증을 해결하는 방법이기는 하나 시간이 지나면 또 재발할 수 있다.
이밖에 다양한 허리, 어깨, 등이나 가슴, 사지 등의 통증에 대해 경막외강내로 진통제를 투여하거나 전기로 신경을 자극하는 방법, 저출력 레이저 요법 등이 사용된다.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이상철 교수는 "통증은 가능한 한 조기에 진단 치료받는 것이 치료도 쉽고 만성화한 뒤의 고통을 덜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런가 하면 이독치독(以毒治毒)의 대체의학적 접근방법도 있다. 봉독(벌침의 독)의 치료효과에 대해선 서양에서도 100년 전부터 연구돼 왔다.
안전성이 검증된 주사제 '아피톡신'(구주제약)이 식약청 허가를 받아 9월부터 시판될 예정이어서 봉독에 대한 알레르기 걱정도 덜 수 있게 됐다. 봉독이 통증치료에 효과를 내는 것은 주요 성분인 멜리틴, 아파민, 비반세포감소 펩티드, 아돌라핀 등이 다양한 경로로 항염증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즉 아스피린처럼 염증과 통증에 관여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을 억제할 뿐 아니라 기존의 약물이 담당하지 못하는 다양한 항염증 작용이 있다는 것.
아피톡신을 개발한 김문호 안아픈세상 원장은 "골관절염 근육통 등 퇴행성 만성 통증뿐 아니라 류마티스 관절염, 다발성 경화증 등 자가면역질환에도 봉독요법이 효과를 보인다"고 설명한다.
주2회, 2∼4개월간 주사를 맞아야 하며 가렵고 부어오르거나 어지러움을 느끼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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