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없이 극한 대결로 치닫던 북미 관계에 낙관론의 기운이 조심스럽게 움트고 있다. 중국의 적극적인 중재 노력으로 4월 베이징(北京) 3자회담의 후속 회담 성사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북한 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대한 기대감도 상승하고 있다.현재 중국이 북한과 미국을 부지런히 오가며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새로운 회담 형식은 '3자회담 후 5자회담'방식으로 확인되고 있다. 중국측은 최근 왕이(王毅) 외교부 부부장을 워싱턴에 보내 미 정부에 이 제안에 대해 운을 띄운 뒤 북한에는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부 부부장을 파견,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설득과 압박'을 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친서까지 들고 온 중국의 특사에게 "회담 형식에는 구애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함으로써 선 양자회담 후 다자회담 주장을 누그러뜨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쪽에서도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고 있다. "3자 회담으로 시작해 5자 회담으로 확대하는 안에 개방적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볼튼 국무부 차관의 일본 언론 기자회견 내용은 제한적 다자 회담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미 정부 내 분위기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선 3자 회담안은 미국과 북한의 입장을 절충한 회담 틀이다. 북한과의 단독 대좌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온 미국과, 북미 양자대화를 위해 '핵 위협'의 강도를 높여온 북한이 서로의 체면을 살릴 수 있는 형태다.
그러나 아직 미국의 입장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는 "볼튼 차관을 국무부 입장으로 볼 수 있느냐는 데는 아직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베이징 회담 후 줄곧 한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5자 회담을 강조해온 터이어서 정부 내의 의견조정을 거쳐야 최종 입장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 고위 관리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우리는 5자 회담이 옳은 형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를 계속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입장을 감안하면 미국이 중국 제안을 수용하더라도 3자 회담은 단 한 차례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회담 형식보다 더 큰 난제는 북미가 나눌 대화의 내용이다. 북한측은 회담에 앞서 미측의 체제보장 등에 대한 의사 표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중국을 통해 미측에 전달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미측이 이에 동의해줄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미국은 지금까지 다자회담의 틀 속에서 북한의 핵 포기 의사를 확인한 뒤 체제보장 문제 등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미측은 3자 회담을 받아들인다 해도 곧바로 열릴 5자 회담의 의제나 방식 절차를 논의하는 예비적 성격에 비중을 둘 가능성이 높지만 북한측은 체제보장이나 경제지원 등 실질적인 내용을 논의하려 들 것으로 보여 현안 논의에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중국이 양측의 양보를 끌어내지 못할 경우 모처럼 대화의 전기를 마련한 북미 관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게 한반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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