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 안양병원에서 담도암 말기 진단을 받은 강모(79·경기 안양시) 할머니. 당뇨, 신부전 등이 겹쳐있어 수술이나 항암치료조차 하지 못하고 담당의사로부터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지금은 거의 거동을 하지 못하는 강 할머니는 하루 종일 작은 방에 누워 있다. 수시로 찾아오는 격한 통증은 하루 4번 이상 진통제에 의존해 이겨나간다. 이런 강 할머니에게 거의 유일한 위안은 1주일에 3번씩 찾아오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다. 강 할머니를 매일 간병하는 며느리 신모(46)씨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이때이다.16일 호스피스 간호사인 최화숙(48·경인여대 겸임교수)씨가 방안에 들어서자 할머니의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할머니 괜찮으세요"하고 물어보자 "집에 가고 싶어"하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거동을 하지 못해 '소변줄'을 달고 있는 강 할머니는 불편한 지 이를 빼기 일쑤. 최씨는 불편해도 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는 맥박도 재어보고 혈압도 체크한다. 최씨는 알아 듣는지 마는지 알 수 없는 강 할머니에게 이런 저런 말을 건네며 관심을 보였고 기도도 함께 했다.
"말기암 환자는 소위 사회적 죽음이 먼저 옵니다. 사회와 단절이 될 수 밖에 없고 의사마저도 회복불가능한 걸 알기 때문에 회진 돌 때 관심을 가져주지 않기 일쑤여서 인간적인 대접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상당수의 회복불가능한 말기암 환자의 경우 병원으로부터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집에서 편하게 지내시라'는 퇴원 권유를 받고 집으로 오게 된다. 그러나 실상 끊임없이 찾아오는 격통과 소외감으로 편치 않은 투병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환자의 육체적 통증완화와 정신적 안정을 도와주는 호스피스의 필요성은 매우 크다. 최씨는 "호스피스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인격체로서의 존엄을 지켜주는 일이기 때문에 생명사랑운동"이라고 했다.
이화여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최씨가 호스피스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87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호스피스과에서 자원봉사자로 호스피스 관련 외국서적을 번역하는 일을 하면서 처음 이 분야를 접했고 이듬해 3월 미국 선교사로 연세대 간호대 교수였던 메리언 킹슬리가 국내에 처음 설립한 가정호스피스인 세브란스 호스피스에서 말기암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간호사 가운데 호스피스를 전문으로 시작한 것은 최씨가 사실상 처음이다. 이후 호스피스 활동을 계속하다 92년 5월 이화여대 가정호스피스센터가 생기면서 창설멤버로 참여했고 현재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최씨는 호스피스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에는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라는 책도 썼다.
최씨는 "사실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는 말기암 환자나 가족들은 국내 실정상 대단히 행운"이라며 "날로 늘어나는 암환자를 감안할 때 호스피스기관이나 전문인력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매년 10만여명의 암환자가 발생하고 이 가운데 6만여명이 사망하지만 실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는 암환자는 1∼2%안팎에 불과해 대부분의 환자는 고통속에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 호스피스 실태
호스피스(Hospice Care)는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편안한 임종을 위한 의술이다. 1800년대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수녀원이 거리에서 죽어가는 가난한 환자를 데려와 임종준비를 시킨 데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60년대 영국 런던의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가 시초가 돼 전세계적으로 보급됐다. 현재 미국에는 3,000여개, 영국에는 200여개의 호스피스 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65년 강원 강릉의 갈바리의원에서 외국인 수녀들이 임종자에 대한 간호를 한 것이 호스피스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80년대 들어 가톨릭대 의대와 간호학과에서 호스피스 활동이 시작돼 강남성모병원을 중심으로 활동이 이뤄졌다. 90년대 이후 말기암환자에 대한 호스피스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면서 호스피스 프로그램이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현재 의료기관으로는 세브란스, 계명대 동산의료원, 여의도 성모병원, 성바오로병원, 부산대병원 등이 호스피스과를 두고 말기암환자를 관리하고 있다. 또 사회복지단체나 비영리법인, 자원봉사모임 등도 현재 70∼100여개의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나 선진국에 비하면 태부족인 상황이다.
매년 10만명씩 발생하는 암환자에 비해 전문인력은 크게 부족해 실제 호스피스 혜택을 받는 암환자가 미미한 실정이다. 호스피스활동에 관심을 갖는 자원봉사자가 최근 들어 크게 늘면서 한국호스피스협회로부터 자격인증을 받은 자원봉사자가 1,000명 이상 배출됐으나 전문성 부족으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암은 말기에 치료비용이 집중돼 가정은 물론 건강보험 재정측면에서도 부담이 되고 있어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도화하는 문제가 검토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호스피스 진료비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호스피스 전문병원이나 전문병상 확충, 호스피스 전문간호사 등 호스피스 전문의료인력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미국은 이미 82년 호스피스 서비스를 메디 케어(노인층 대상 의료보호제도)에서 실시하고 있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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