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 화정동에 사는 직장인 김모(37)씨는 최근 서울 목동 현대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5만원어치 물건을 산 뒤 계산대에서 50만원짜리 현대 기프트카드를 제시했으나 직원으로부터 "그 카드는 받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결제를 거절당한 것이다. 김씨는 다행히 다른 신용카드로 구매를 할 수 있었으나 백화점 측에서 특별한 설명도 없이 기프트 카드를 받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최근 각 신용카드사들이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는 무기명 선불카드(기프트카드)가 정작 메이저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에서 무용지물에 불과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6조원으로 추산되는 상품권 시장을 서로 독점적으로 차지하려는 카드업계와 유통업계의 해묵은 갈등 때문이다.기프트카드는 3만, 5만, 10만, 30만, 50만원처럼 쓸 수 있는 구매한도를 미리 정한 다음 최고 30회까지 일반 신용카드처럼 물건을 살 수 있는 무기명 선불카드. 신용카드와 달리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고, 해당 백화점이나 제휴 업체에서만 쓸 수 있는 백화점 상품권과는 달리 일반 신용카드 가맹점에서도 쓸 수 있어 점점 시장규모가 커지는 신종 지불결제 수단이다. 올해 기프트카드 시장규모는 4,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기프트카드를 쓸 수 있는 곳은 중소 백화점과 일부 대형할인매장, 일반 신용카드 가맹점 뿐이다.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3대 메이저 백화점은 물론 까르푸,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 할인매점 등 정작 기프트카드를 사용할 만한 곳에서는 쓸모 없는 물건에 불과하다.
백화점과 할인매장이 기프트카드 결제를 꺼리는 것은 자사가 발행한 상품권의 유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대형 백화점측은 "기프트카드가 일종의 신용카드인 만큼 별도의 카드 가맹점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상품권 시장에서 70∼80%를 차지하는 대형 업체의 상품권 시장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 차원의 보호수단이라는 지적이 많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지난해 상품권 시장규모는 무려 1조2,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해당 백화점들이 결제용 전산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기프트카드를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터무니 없는 말"이라며 "백화점은 매장 계산대 직원들에게 손님이 기프트카드로 결제를 하려 할 경우 다른 신용카드로 사용토록 권하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통업계 관계자는 "상품권은 발행 후 실제 상품권을 갖고 쇼핑을 하기까지 기간이 통상 2개월이 걸려 해당 백화점에 돌아오는 금융이익이 막대하다"며 "물건을 사고 소액이 남아 폐기 처분되는 금액도 발행금액의 5∼10%나 되는 만큼 '황금알 낳는 거위'인 상품권 시장을 버리고 후발 기프트카드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처지"라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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