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시간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이 많으면 새벽 2, 3시까지. 자원 활동가의 일당은 1만원. 정식 스태프가 돼도 월급은 100만원이 고작이다. 그런데도 19일 폐막하는 제7회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 스태프와 자원 활동가의 얼굴은 늘 상기돼 있다. 영화 소년, 영화 소녀들에게 영화제는 축제이고 난장이기 때문이다. 부천영화제가 아시아권의 대표적 영화제로 성장한 것도 이들의 힘을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영화제 조직위 소속 40명의 스태프와 스스로 '자활'이라 부르는 214명의 자원활동가들은 정해진 임무에 따라 5개 상영관의 장내 정리, 홍보물 준비, 관객 운송용 셔틀버스 점검 등으로 정신없이 바쁘다. 이들의 일과는 4회 상영이 끝나는 밤 11시에나 매듭되고, 심야 상영이 있는 날이면 새벽 2시까지 계속된다. 이 때문에 이들은 아예 복사골 문화센터 6층에서 합숙을 하며 지낸다. 식사는 물론 빨래도 각자 알아서 해결한다. 군대 생활이나 다름없는 빡빡한 일과지만 그래도 이들은 하루 하루가 즐겁다.조직위 기획팀 소속의 최현준(28)·홍성국(28)씨는 2000년 제4회 영화제 때 자원 활동가로 참여했다가 영화제의 매력에 빠져 제5회 때부터 아예 정식 스태프로 눌러 앉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최씨는 관객 수송용 셔틀버스 배차 담당, 홍씨는 티켓 판매 업무를 맡고 있다.
"영화제의 매력이요? 관객, 스태프, 자원활동가가 3위 일체가 돼서 행사를 즐긴다는 점이죠. 스태프나 자원활동가 가운데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일이라고 생각하면 박봉과 격무를 견뎌낼 사람이 없을 걸요." 최씨는 영화제를 통해 낯선 사람들과 공통된 소재를 매개로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을 최대의 매력으로 꼽았다. 두 사람은 앞으로도 이런 행사와 관련된 일을 할 예정이다. 대학에서 최씨는 신문방송학, 홍씨는 국제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거기에 미련을 두지 않은 지 오래다.
"5회 때부터 지켜보니까 매년 관객이 조금씩 늘어나더라구요. 지난해 5만7,000명의 관객이 다녀갔고 올해는 6만명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홍씨는 매회 늘어나는 관객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그렇지만 홈페이지를 보면 관객들이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제 홈페이지(www.pifan.com) 게시판에 미흡한 행사 준비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 글을 보면 가슴이 뜨끔할 때가 많아요. 요즘은 홈페이지 보기가 겁나요."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자원활동가로 참여한 윤강로(27)씨와 김대방(22)씨는 5개 상영관 가운데 시민회관 상영관을 맡고 있다. 윤씨는 상영관 자원 활동가들을 총괄하는 상영관 매니저이며, 김씨는 장내 정리를 책임지고 있다.
윤씨는 곧 독립영화 제작에 들어갈 예비 영화감독이고 김씨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부천, 전주, 부산 등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마다 팔을 걷어 붙이고 참여하는 영화제 전문 자원봉사자이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는 있지만 취미가 같아서 꼭 친구 같다.
참여 동기도 같다. "영화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사실 영화를 실컷 보려고 자원 활동가로 지원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스태프와 자원 활동가들은 행사장에서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들이 마냥 부러워요." 그렇지만 정작 부러움의 대상인 관객들 가운데 일부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화가 날 때가 있다. 상영 중에 카메라를 꺼내 촬영을 하거나 엄연히 금지돼 있는데도 음식물을 갖고 입장하는 관객이 있다. 두 사람은 영화제에만 오면 막무가내가 되는 관객이 가장 골칫거리라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의 바람은 부천영화제가 더욱 널리 알려져 더 많은 사람이 행사장을 찾는 것이다. 이번 영화제 상영 작품 중 두 사람이 첫 손가락에 꼽는 것은 일본 사부 감독의 '드라이브'. "영화제 이름에 걸맞게 정말 판타스틱하다"는 게 추천의 변이다.
자원 활동가들은 영화제가 끝나도 흩어지지 않는다. 부천영화제 자원 활동가들의 홈페이지 '피파니즘' (cafe.daum.net/pifanlub)까지 개설, 역대 자원활동가 등 209명이 꾸려가고 있다.
/글·사진=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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