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빛과 힘으로 지역을 가꾸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화관광자원을 발굴해 널리 알리면 사람들이 모이고 돈도 된다. 경기 부천시 원미구는 한 달 전 구청 뒤편에 '원미동사람들의 거리'를 만들었다. 그 곳에 살면서 1980년대 서민들의 애환을 그린 양귀자의 연작소설 '원미동사람들'은 중학교 3-1교과서에 실려 있다. 또 경기 양평군은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의 무대를 9월까지 선정해 소나기마을을 만들고, 황순원문학관을 세우는 한편, 징검다리 원두막 메밀밭도 복원하기로 했다. 소설 속의 서낭골 갈밭마을은 지금도 서종면 노문리에 있다.■ 충남 보령시는 한 달 전 오천면 소성리 조소산에 도미부인의 묘를 쓰고 이장을 마쳤다. 진해시에 있던 묘의 주변이 임해공단 조성지로 편입되자 옮긴 것이다. 백제 개루왕의 협박에도 끝내 정절을 지킨 도미부인설화는 삼국사기에 실려 있고, 박종화의 소설 '아랑의 정조', 창극 '도미부인'으로 재창조됐다. 최근엔 최인호의 소설 '몽유도원도'가 뮤지컬로 상연됐다. 그러나 경기 하남시는 검단산 아래가 설화의 고장이라며 발굴조사까지 했다. 서울 강동구는 곧 천호동공원에 도미부인 동상을 세운다. 서울 송파구, 경기 구리시도 연고를 주장하고 있다.
■ 문화캐릭터를 둘러싼 연고권싸움은 이처럼 치열하다. 지역특구사업이 본격화하면 분쟁이 더욱 심해질 것 같다. 대구 동구와 경북 경산시는 영험하다는 팔공산 갓바위 문제로 다투고 있다. 충남 예산군과 전남 곡성군은 서로 심청이 우리고향 사람이라고 맞서고 있다. 전남 장성군과 강원 강릉시의 홍길동다툼도 여전하다. 매년 5월 초 홍길동축제를 열고 캐릭터사업을 벌여 온 장성군은 최근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에 생가까지 복원했다. 강릉시는 '홍길동전'의 작자 허균의 고향이 강릉이라는 점을 내세워 9월에 허균·허난설헌 문화제를 열고 있다.
■ 청마 유치환의 출생지문제는 소송으로 번졌다. 청마의 딸들은 통영의 청마문학관 안내판이 잘못됐다며 지난해 2월 인격권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이들이 주장하는 출생지는 거제시 둔덕면이다. 법원이 그 표기를 빼도록 올해 4월 강제조정한 뒤에도 분쟁은 해결되지 않았다. 유족들의 청구는 어제 기각되고 말았지만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청마는 1908년생이며, 거제군은 1914년 통영에 합쳐졌다가 1953년 다시 분리됐었다. 청마문학관은 지금 통영에도 있고 거제에도 있다. 출생지다툼으로 이미 36년 전에 타계한 시인만 딱하게 됐다.
/임철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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