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은 지구촌의 전염병." 지난 6월 열린 유럽 비만 학술대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세계 각국에서 뚱뚱보가 급속히 늘어나는 현상에 주목하며 비만을 새로운 '유행병'으로 규정했다. 국제비만특별조사위(IOTF)는 전세계에서 '과체중' 또는 '비만'에 해당하는 사람이 무려 17억명에 달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비만으로 인한 사망자와 경제적 비용이 급증하면서 전세계 각국은 속속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살 빼기 전쟁에서 최전선에 나선 나라는 미국. 토니 톰슨 보건복지 장관은 지난 9일 "미국의 모든 식품업체들은 2006년부터 의무적으로 제조 식품에 비만을 초래하는 전이 지방산 함량을 표시하는 라벨을 부착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 해 6월 "건강으로 애국하자"며 선포한 '비만과의 전쟁'의 후속 조치인 셈이다.뉴욕시 의회는 지난달 말 각급 공립학교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에서 학생들을 살찌게 하는 사탕 도넛 스낵류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영양 지침을 만들어 금년 9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시의회는 또 학교 급식 메뉴에서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빼도록 했다.
미국 최대 식품회사인 크래프트는 이달초 소비자들의 비만을 방지하기 위해 조리법을 바꾸고 비스킷 등 과자 크기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크래프트의 결정은 늘어나는 비만 소송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크래프트는 올해 초 이 회사의 오레오스 비스킷이 동맥 경화를 일으키는 지방을 함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다. 미국의 변호사들은 "21세기 담배는 바로 식품"이라고 주장하면서 패스트푸드업체를 새로운 소송 타깃으로 설정했다.
비만 소송에 시달리는 맥도날드는 지난 4월부터 '모듬 생과일'을 새로운 메뉴로 추가하는 등 회사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다. 코카콜라와 펩시 등도 만보기 나눠주기 등 독특한 아이디어로 비만과의 전쟁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의 500대 기업 관계자들은 지난 달 근로자들의 비만을 줄이기 위해 공조 체제를 구축해 협력해나가기로 결의했다. 직원들의 비만 문제로 의료보험비 등 고용주들의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영국에서는 비스킷이나 케이크 등 지방 성분이 많은 가공 식품에 대해 별도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영국 의사협회(BMA)는 17.5%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할 방침이다. 수백만 파운드의 비만식품세를 거둬 국민 건강을 위해 활용하자는 발상이다.
뉴질랜드 정부도 금년 3월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아넷 킹 뉴질랜드 보건장관은 "2011년에는 성인 10명 가운데 3명 꼴로 비만에 직면할 수 있다"며 비만 관련 질병을 막기 위해 수백만 뉴질랜드 달러가 투입되는 국민건강 정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킹 장관은 "심장질환과 뇌졸중, 당뇨병, 암과 같은 치명적 질병들은 대부분 비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뉴질랜드에서 비만과의 전쟁은 교통 당국과 지방정부, 교육계, 식품, 체육 분야 등 각계 각층의 참여를 유도하는 종합적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될 전망이다.
각국이 살빼기 전쟁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보다 비만으로 인한 사망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에서 체중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현재 연간 250만명에 이르고, 2020년에는 5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 비만과 직접 관련된 연간 사망자는 30만명으로 담배로 인한 사망자 40만명에 근접한다. 매년 전세계에서 숨지는 5,650만명 중에서 60%가량이 심장질환, 당뇨병, 고혈압 등 음식물 관련 질병인 점으로 보아 비만으로 인한 간접 사망자는 휠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비만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이 급증하는 것도 주요 배경이다. 미국에서 2002년 건강 관련 지출은 총 1조 5,000억 달러로 미국 국민총생산(GNP)의 15%를 차지하며 이 가운데 비만 관련 질환 치료를 위해 지급된 의료보험 급여는 785억 달러(93조 6,000억원)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체질량지수(BMI)를 기준으로 할 경우 과체중을 뺀 세계의 비만 인구는 8억∼9억명에 이른다는 것이 국제비만특별조사위의 분석이다. BMI는 체중(㎏)을 신장(m)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로 25 이상이면 과체중, 30 이상이면 비만으로 분류된다. 이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41% 가량이 비만에 해당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시아인의 경우 23.3을 넘을 경우 비만 관련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면서 아시아인의 기준 조정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 비만퇴치 생활수칙
비만 퇴치에 나선 각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비만 퇴치를 위한 생활 수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 수칙들은 가장 철저히 검증된 최상의 방법이라는 점에서 살을 빼고자 하는 이들에게 1차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직접 두 가지 수칙을 엄선해 발표했다. 그는 하루 최소 다섯 가지 이상의 야채나 과일을 먹어 단백질, 지방 섭취량을 줄이고 1시간 이상 운동할 것을 미 국민들에게 강조했다. 요체는 살빼기의 왕도란 있을 수 없고 음식 조절과 운동만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뉴질랜드 보건부는 여기에 지방 설탕 소금 사용량을 줄이라는 권고를 덧붙였다. 뉴질랜드의 경우 소아 비만을 줄이기 위해 신생아에게 최소 6개월간 모유를 먹이도록 권장한 대목이 눈에 띈다.
미국 콜로라도 주는 주민들에게 만보기를 나눠주면서 하루 2,000보 더 걷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 캠페인은 하루에 햄버거 한 조각이라도 덜 먹어 100㎈라도 줄이는 것이 비만 퇴치의 첩경이라는 미 콜로라도 대학측 권고에 따른 것이다.
하루 섭취 영양분의 절반 이상이 살과 지방으로 쌓이는 현대인에게는 이 방법은 피할 수 없는 제1보인 듯 하다. 이상의 권고를 종합하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식욕과 싸움을 벌이는 고통스런 과정을 겪지 않고서는 비만을 물리칠 방법은 없는 것이다.
민간 연구팀들이 제시한 생활 수칙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올 4월 미 하버드대 연구팀의 권고 내용이다. 이 대학 프랭크 후 박사는 하루 2시간 이상 TV를 시청할 때 비만도가 25%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를 발표하면서 간식과 패스트푸드 섭취를 동반하는 TV 시청 시간을 주 10시간 이하로 줄이라고 충고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올 3월 하루 소금 섭취량을 5g 이하로 줄이고, 하루 400g 이상의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섭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다이어트 수칙을 발표했다.
하지만 WHO는 살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항을 잊지 않았다. 단번에 현 체중의 10% 이상을 빼고 섭취 영양분의 30% 이상을 급격히 줄이는 것은 인체에 해롭다는 것이다.
여유를 갖고 오랜 기간에 걸쳐 다이어트에 나서라는 것으로, 현재로서는 생활 습관을 뜯어고치는 것이 비만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인 듯하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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