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 졸업생도 초봉 3,000만원을 받는 회사라는데, 누가 마다하겠습니까"2001년 광주 J대학교를 졸업하고 3년째 취업재수생으로 있는 김모(28)씨에게 '취업브로커' 황모(40)씨의 제안은 거절할 수 없는 거래였다. 그가 여수의 유명 대기업 공장에 취업시켜 주겠다며 제시한 대가는 3,000만원. "부모님 아파트를 담보잡고 은행 융자를 냈습니다. 기약 없는 무직자 생활을 전전하느니 1년 연봉을 헌납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어느날 여수경찰서에서 황 씨와의 연관을 묻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제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취업미끼에 수천만원 빼앗겨
경기 침체와 기업들의 감축 경영으로 취업난이 장기화되면서 최근 채용과 관련된 비리가 극성이다. 취업 희망자들의 절박한 처지를 악용해 돈을 착복하는 사기행각이 속출하는 가운데, 취업 청탁사례도 늘어나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형 석유화학공장이 밀집한 전남 여수에서는 채용비리가 지역사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이 지역 공단 L사 공장의 전·현직 노조 부위원장 최모(40)씨와 임모씨(42)가 경찰에 구속됐다. L사 공장 취업을 빌미로 5명으로부터 1억5,000여만원을 받아 챙긴 것이 이들의 혐의다.
현재 여수경찰서가 조사중인 채용관련 금품 수수사건은 이외에도 6∼7건에 이른다. 모두 취업 희망자로부터 수천만원을 착복한 사건이다. 경찰 관계자는 "여수지역의 채용비리는 이미 구조화된 문제"라고 말했다. 이곳 대기업 공장에서 전문대졸 생산직 직원의 초봉은 3,000만원이 넘으며, 대부분 58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 취업공고가 한번 나붙으면 평균 100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고 한다. "당연히 나가려는 사람은 없고, 취업 희망자는 많으니 비리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비리의 사슬에는 노조도 무관하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L사 노조원은 "이번에 구속된 전·현직 부위원장은 회사의 채용과정에 압력을 행사한다는 소문으로 말이 많았다"며 "임단협과 파업을 구실로 사리사욕을 채웠다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청탁과 사회전반으로 확대 조짐
취업과 관련된 각종 청탁도 급증하고 있어 채용비리는 더욱 확대될 조짐이다. 한 전자 대기업의 인사담당 임원은 "요즘 들어 몰려드는 취업청탁에 일을 제대로 못할 지경"이라며 "친인척은 물론이고 노조, 정치인, 심지어는 일부 정부 관료로부터도 청탁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철강업체 D사의 간부는 "한동안 뜸했던 취업 청탁이 요즘 부쩍 늘었다. 예전에는 부모나 친척을 통해 취업을 부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엔 취업 브로커를 통해 접촉해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취업정보업체 인크루트 관계자는 "취업사기나 채용비리로 문제가 생길 경우 노동부 고용 안정센터(1588-1919)에 신고하면 자세한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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