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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임금 피크제

입력
2003.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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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직 은행 지점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1998년 IMF 체제 초기 구조조정으로 명예 퇴직한 그는 거의 매일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한다. 사인도 결국 술 때문이었다. 명문대학을 나와 잘 나가던 그는 한창 일 할 나이인 54세에 갑자기 직장을 떠나야 했다. 무력감 상실감 배신감 자괴심 등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자제력을 잃어버렸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사건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는 전혀 새로운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IMF는 아직도 그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을 본다.■ 직장에서 '사오정'(45세가 정년이라는 의미) '오륙도'(56세까지 회사에 다니면 도둑)라는 말이 나돈 지는 이미 오래됐다. '빛의 속도만큼이나 변하는 세계'에 걸맞게 나이를 기준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사회가 그만큼 젊어지고 역동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사회를 지탱하는 또 다른 요인인 사려 깊음이나 노련함, 안정감 등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좀 더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통계가 있다. 대한상의가 최근 서울지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그렇다. 노후대책 미비가 주요 이유겠지만, 그 못지않게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기회상실을 아쉬워하는 것은 아닐까.

■ 영국 정부는 이달 초 조기 퇴직을 강요하는 고용주를 처벌하고 연령 차별주의적 광고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하원에 제출했다. 휴이트 통산부 장관은 젊어야 일을 잘한다는 편견이야말로 우리가 도전해야 할 과제라며 연령 차별주의는 인류가 맞서 싸워 온 수많은 차별주의의 마지막 보루라고 강조했다. 조기 퇴직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문제지만, 노동자들에게 보다 많은 선택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 임금 피크제라는 것이 있다. 정년을 보장하되 정년 몇 해 전부터 임금을 낮추는 제도다. 일자리를 나누는(work sharing) 방식이다. 이 제도가 고령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삭감과 퇴진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고령화 시대에 조직과 직원이 공생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되고 있다. 직원은 정규직 신분을 유지할 수 있고, 기업은 적은 비용으로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에서는 신용보증기금이 시행하고 있고, 몇몇 금융기관이 적극 검토 중이다. 정부도 공직 사회에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대비책은 아주 미비하다. 고령자에게 일자리를 어떻게 마련해 주느냐가 대책의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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