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시작할 무렵 건강보험은 조용하게 큰 일을 치렀다. 건강보험만 두고 보자면 역사에 기록될 만한 중요한 일이다. 다름아니라 오랫동안 논란을 벌여오던 '통합' 문제를 완전히 마무리한 것이다. 마무리란 2000년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자영자)의 관리운영조직을 합친 것에 이어 올해 재정까지 통합한 것을 의미한다.새삼 통합의 장단점이 어떻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하자. 이미 충분히 논의됐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건강보험이 가야 할 길이 너무 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길이 무슨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국민 모두가 이미 아는 바 그대로, 건강보험이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본래의 구실을 다하게 하는 것이 가장 급하다.
건강보험은 모든 국민이 돈을 부담하고 아픈 사람이 모아진 돈의 혜택을 보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돈을 부담하는 사람과 혜택을 보는 사람이 다른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돈을 내는 사람은 가급적 적게 내려는 반면, 혜택을 보는 사람은 가급적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현재 우리 건강보험이 맞고 있는 상황이 꼭 이렇다.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는 많지 않은 반면(의견이 다른 분도 계실 것이나, 평균으로 보면 외국보다 훨씬 보험료가 적다), 보험혜택에 대한 요구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꺼번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중병인 경우에는 보험이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소리가 많다. 몇천만원의 진료비에 보험이 부담하는 것은 반도 안된다면 이런 불평은 당연하다. 오죽하면 보험이 아니라 '진료비 할인제도'라는 비아냥이 나올까.
문제가 간단치 않고 원인도 복합적이기 때문에 쾌도난마식의 해결책은 없다. 그러나 보험료든 정부 예산이든 건강보험에 돈을 더 들여야 한다. 그래야 혜택이 늘어나고 중병을 앓아도 보험이 바람막이를 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돈을 더 써야 한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국민이 충분히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보험의 비용지출이 잘 관리되고 투명해야 한다. 어느 정도면 충분한가. 최대한 아껴 썼는데도 모자란다는 소리가 국민에게서 먼저 나올 정도여야 한다. 또 하나, 국민이 건강보험의 가치를 신뢰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 보험료를 내가 다 찾아 써야 공평한 건강보험이 아니다. 사회구성원 전체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나도 겪을 수 있는 사고를 대비하여 드는 '보험'이 바로 건강보험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현재 건강보험이 당면한 과제는 그냥 정책기술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 정부가 할 일의 첫째는 국민이 건강보험을 믿게 하는 일이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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