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흰 뱀을 찾아서'로 1993년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한 소설가 남상순(40·사진)씨가 첫 소설집 '우체부가 없는 사진'(문이당 발행)을 출간했다. 그는 95년 장편 '나비는 어떻게 앉는가'를 낸 후 오랫동안 침묵했다.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상흔이 소설 곳곳에 음으로 양으로 잠복해 있다. 그것들을 똑바로 쳐다보는 게 힘들었다"고 소설집이 늦어진 이유를 전했다.그 상흔은 80년대의 기억이다. 표제작에서 상처는 음으로 잠복해 있다. 주인공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만난 아름다운 여학생에게 빠져 주변을 맴돈다. 여자를 좇아 운동권 학생이 된다. 80년대가 지나고 여자와 연인이 되었다 헤어지고도 학생운동을 하면서 보냈던 시간은 어느 때보다 소중한 기억이 됐다. 연작 '악연'에서 상처는 양으로 도드라진다. '악연·1'에서 화자는 운동권 시절 동지들을 배신한 박미근을 찾아다니면서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쓰는 것으로 상처를 이기려 애쓴다. '악연·2'에서 우영은 운동권 친구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자신의 연인 성희와 결혼한 박헌수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우영은 10여 년만에 맞닥뜨린 과거의 기억을 계기로 성희와 재회함으로써 옛 상처와 맞서고자 한다.
2000년대에 후일담 소설은 묵직한 의미를 갖는 대신 뒤늦게 고백하는 개인적 체험처럼 읽힌다. 작가 남씨에게 첫 소설집은 건너가야 할 다리다. 그는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흔과 정면으로 맞서는 싸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 노력은 단편 '죽음의 무늬'에서 찾아진다. 폭력적인 부친을 부인하면서도 그의 부재에 짓눌리는 모순된 감정을 드러내는 작품을 통해, 마음의 무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작가의 의지를 만날 수 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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