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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금연記]임효재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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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금연記]임효재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입력
2003.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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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담배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4학년 때이다. 진로를 고심하면서 피워본 담배 한 개비였지만 그 뒤로는 5분이 멀다 하고 피워대 담배 연기에 절은 인생이 돼버리고 말았다.그러한 습관은 유적 발굴 현장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목탄편이 나오면 그것으로 정확한 과학적 연대를 판정하는데, 담뱃재가 떨어지면 그 연대는 실제보다 훨씬 후대로 나온다는 엄연한 사실도 잊은 채 계속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습성이 붙은 것이다. 유적을 향하여 매일 올라다니는 길에도 버린 꽁초가 길을 알려줄 정도로 깔려 있었다.

1970년대 흔암리 청동기 취락지 발굴 때도 그랬다. 이 유적지는 중국에서 전래된 쌀의 유입 경로를 밝히는 중요한 현장으로 발굴 결과가 나올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다 보니 담배를 입에서 뗄 수가 없었다. 우리 청동기인의 집터 16채와 탄화된 쌀과 보리, 조, 수수가 쏟아져 나왔으니 긴장의 연속이었다. 쌀의 전파 경로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이 실물로써 증명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러한 발굴의 성과를 중심으로 일본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하고 나오는 순간, 나는 쓰러질 뻔 했다. 그 동안 발굴과 연구에 몰두하면서 피워온 담배의 해악이 그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이 일로 큰 충격을 받고 나는 담배를 끊었다. 멀리서부터 향긋한 담배 연기의 유혹이 올 때도, 술좌석에서의 담배 권유도 딱 잘라 거절하였다.

그러나 결국 속세에서의 이런 결심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얼마 못가 '딱 한 대'의 유혹으로 그간의 노력을 허사로 만든 게 한두번이 아니다. 역시 허약하기만 한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렇게 끊고 피우기를 몇번이나 계속했다.

그러다 마지막 방법으로 산을 찾기로 했다. 매일 새벽 5시만 되면 일단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인적이 없는 관악산 골짜기로 달려간 것이다. 여기서는 어디라도 향긋한 담배 연기의 유혹이나 또 다른 그 어떤 유혹도 찾을 수 없다. 2주일 이상 등산을 하자 니코틴의 유혹이 점차 멀어졌다. 처음 일주일간은 금단현상으로 걸음조차 제대로 옮길 수 없었지만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담배를 구할 수 없었으니 저절로 이겨내게 된 것 같다.

올해로 담배를 끊은 지 꼭 20년이 된다. 요즘도 새벽 5시만 되면 산으로 향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이 없다. 그렇게 가까웠던 담배 친구를 버리고 산 친구를 사귀니 여러 모로 좋다. 냄새가 나지 않고 깨끗한데다 무엇보다 건강을 얻어 기분이 좋다. 왜 진작 끊지 못했나 후회도 된다. 그러면서 나는 건강을 되찾았지만 혹시 내가 피운 담배와 담뱃재 때문에 유물 연대 측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요즘도 문득 문득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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