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손호철의 정치논평]자해의 정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손호철의 정치논평]자해의 정치

입력
2003.07.15 00:00
0 0

1980년대 초 유학을 가 낡은 차를 산 적이 있다. 낡아빠졌지만 평생 처음 가진 차라 가슴이 뿌듯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너무 우울했는데 놀랍게도 상대방 보험회사가 돈을 주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너무도 친절하게 피해보상을 해주어 차를 고치고도 돈이 남은 것이었다. 이를 보면서 한국의 자해공갈단, 즉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상처를 낸 뒤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자해단을 미국에 수출하면 미국 돈을 전부 긁어 모으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사라진 자해공갈단이 갑자기 다시 생각난 것은 최근의 정국 때문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자해공갈단처럼 자해를 하지 못해 몸부림치는 것 같은 '자해의 정치'를 통해 한심한 자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해경쟁의 백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정대철 민주당대표의 200억원 대선자금 발언이다. 즉, 굿모닝시티와 관련해 수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정 대표가 검찰의 포위가 가까워지자,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희망돼지를 통해 모금한 80억원 이외에도 기업들로부터 200억원을 모금했다는 핵폭탄급 폭로발언을 한 것이다. 단순한 말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자해공갈' 발언을 통해 혼자 당하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를 청와대에 보낸 것이다.

물론 정 대표는 어려운 시절 선대위원장을 맡아 노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또 정 대표가 굿모닝시티로부터 받은 돈도 개인적 용도가 아니라 대선자금과 당을 위한 돈이었을지 모른다. 따라서 정 대표로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부고발자의 입장에서 정치자금 문제의 혁명적 해결을 위한 숭고한 동기에서 대선자금을 폭로한 것이 아닌 바에야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자신이 살기 위해 이 같은 자해발언으로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오는 사태는 자제했어야 옳다.

정 대표의 발언처럼 직접적이고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한나라당도 자해경쟁을 벌이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신들이 발의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특검법안을 스스로 포기하고 북한의 핵개발 비용과 대북송금의 연관성까지도 조사하는 광범위한 제 3의 특검안을 전격적으로 들고 나온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같이 입장을 바꾼 것은 북한이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70여 차례의 고폭실험을 했고 우리 정부가 이를 98년부터 알고 있었다는 고영구 국정원장의 보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 원장의 보고내용은 충격적이다. 또 북한이 계속 고폭실험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대북송금 등 경제적 지원을 계속 한 것이 옳았는가는 논쟁을 해야 할 중요한 정책적 쟁점이다.

그러나 북한이 대북송금을 고폭실험에 사용했는가를 특검이 사법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처럼 말이 되지 않는 제3의 특검안을 들고 나온 것은 한나라당이 스스로 주장하는 합리적 보수와 거리가 먼 '골통 보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해행위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해, 얼마 전 출범한 최병렬 체제가 별 희망이 없음을 보여준 자해행위였다.

이제 자해의 정치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따라서 자해의 상처를 수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 대표는 즉각 대표직을 내놓고 조사에 응해야 한다. 일단 문제가 불거진 이상 민주당은 사태를 은폐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대선자금의 내역을 국민에게 공개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국민들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선자금에 직접 관여하지 않아 잘 모르겠다는 식의 안이한 변명을 넘어서 적극적인 진상공개에 앞장서야 한다. 한나라당도 상식이하의 특검안을 빨리 철회하고 최소한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특검법을 제시해야 한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