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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깬 시네마천국/ 체코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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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깬 시네마천국/ 체코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를 보고

입력
2003.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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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사람, 그리고 영화 예술이 하나가 된 영화제. 국적과 인종, 성별 등 그 어떤 차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영화제. 바클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 모건 프리먼, 구스 반 산트 등 할리우드 스타 배우 및 감독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영화제. 9일 간 476회의 영화 상영, 관람객 총 12만2,440명 등의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아름답게 다가서는 영화제. 원칙과 융통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영화제. (영화를 볼 때만은) VIP를 비롯한 게스트나 일반관객 사이에 아무런 차별이 없는 영화제. 열악한 관람 환경마저도 특징으로 여겨지는 영화제. 영화를 향한 순수한 사랑, 열정과 동시에 인간에 대한 예의가 강렬히 느껴지는 영화제….4∼12일 체코 서북부에 위치한 세계적 온천 휴양 도시 카를로비 바리에서 열린 제38회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는 그런 영화제였다. 칸 못지않은 흥분과 열기를 뿜어내면서도 지독하리만치 귀족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영화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여유와 자유로움, 민주성을 만끽 시켜준,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 꿈의 영화제였다.

아마도 난 앞으로도 오랫 동안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특별 회고전이 열렸던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들이 상영될 때 형성, 표출된 화기애애했던 감동적 분위기를 잊을 수 없을 성싶다. 물론 도중에 나가는 이들도 없진 않았으나 끝까지 자리를 지킨 관객들은 50∼60년 전에 만들어진 그 '철 지난' 영화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아울러 즐기는 게 역력했다.

영화도 영화거니와 그러니 어찌 그 분위기에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건 예술혼에 불타는 독립 영화나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16편의 경쟁작이 선보이는 다른 상영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0일 오후 경쟁작인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이 1,200석의 메인 상영관 벨키 잘에서 상영되던 때의 장면이 생생하다. 개인적 선호 여부를 떠나 그들은 진심으로 감독과 영화를 맞아 대우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은 말할 것 없고, 시작되기 전이나 끝나고 나서나 줄곧 영화와 감독을 향한 예의와 존중을 잃지 않았다.

와중에 내가 한국 영화의 달라진 위상을 새삼 절감했으리라는 것쯤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터이다. 비록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해안선'이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hi)상, 아시아진흥기구(NetPac)상, 특별상인 카를로비 바리 상까지 안는 건 쉽지 않았을 터이기에 말이다. 물론 작품 수준이 전혀 그럴 만하지 않은데, 상을 받았다는 건 아니다.

/카를로비 바리(체코)=전찬일(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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