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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으로 읽어 본 질병]<1>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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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으로 읽어 본 질병]<1>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된다

입력
2003.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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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병이 생겼다 하면, 몸 속에 나쁜 세균이 들어가거나, 못된 세포가 변이를 일으켰다는 식의 생물학적인 측면만을 바라본다.그러나 여러 질병들은 불안이나 갈등과 관련된 정신분석학적 요소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정신분석적 요소는 의사와 환자, 환자와 가족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매주 월요일 정도언 서울대의대 신경정신과 교수가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 여러 질병들을 정신분석학적 안목을 통해 짚어본다.

"갈등도 병이 될 수 있다."

내가 나를 다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내가 아는 내 마음보다 내가 모르는 내 마음이 더 깊고 크다. 일부분만 수면 위에 떠 있고 훨씬 더 큰 덩어리는 물밑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 빙산처럼 내가 모르는 무의식의 세계가 더 깊고 크다.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어려서부터 키워 온 갈등, 소망, 욕구의 덩어리들이 떠 다닌다. 이러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일상생활 속의 환상, 꿈, 말 실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무의식 속의 갈등은 얌전하게 있지 못하고 우리를 늘 자극하고 괴롭힌다. 갈등의 심부름꾼은 불안이다. 갈등과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마음과 몸의 건강이 결정된다.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마음 속 깊이에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큰 손'인 갈등을 들여다보는 현미경이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다. 여기저기 아파 병원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아무리 첨단 의료기기를 동원해서 정밀 검사를 반복해도 원인이 안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자세히 살펴 보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수가 흔히 있다. 몸과 마음은 칼로 무 자르듯이 구분할 수가 없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영향을 받고 마음이 아파도 몸이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그 뒤에 갈등이 숨어 있다.

갈등(葛藤)은 두 개의 상반되는 힘이 부딪히는 것이다. 고전적 의미는 '칡 덩굴과 등나무 덩굴이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며느리로서 도리를 해야 하지만 시어머니가 싫은 며느리는 심각한 갈등에 빠진다. 마음 속 욕구대로 하자니 아래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고, 도리대로 하자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갈등의 소화불량에 걸리면 우울증에 빠지거나 몸이 무너진다.

갈등에 뿌리가 있는 병들을 '몸통' 에 해당하는 갈등을 다루지 않고 '깃털' 인 증상만을 해소시켜서는 근원적인 치료가 아니다. 재발도 잘 된다. 정신분석적 치료는 마음을 움직이는 기법들을 통해 갈등을 표출시키고 갈등의 원인을 해소시켜 봉합하는 마음의 수술이다. 믿을 수 있는 외과의사에게 몸을 맡기듯이 정신분석적 치료도 제대로 수련 받은 정신과 의사에게 맡겨야 한다. 몸이 마음을, 마음이 몸을 움직이는 오묘함을 이해하고 균형 잡힌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갈등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서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은 한국의 대표 갈등이다. 왜 그들은 사이가 좋기가 어려울까. 아들이면서 동시에 남편인 한 남자를 둘러싸고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대립한다. 당사자들의 교육 정도, 집안의 가풍, 아들의 역할, 시아버지의 태도에 따라 다소 양상이 다르지만 고부간 갈등의 뿌리는 깊고 단순하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다 커서 이제는 딴 여자와 더 가까워질 수 밖에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어머니와 법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며느리 사이의 힘겨루기이다. 마음이 안 가는 남편 대신 아들이 마음 속 빈 구석을 채워 주었던 경우에는 더 심각하다.

중간에서 난처한 입장에 처한 아들은 대개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그러면 암투는 계속되고 상황은 악화된다. 그 과정에서 고혈압, 당뇨병,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신체화장애 등등으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아들은 병원을 찾는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재정의 몇 퍼센트 정도가 고부간의 갈등으로 인해 소진되는지를 조사해낸다면 깜짝 놀랄만한 자료가 나올 수도 있다.

갈등의 해소책은 무엇인가. 시어머니, 며느리, 아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당장은 힘들더라도 서로 간의 역할과 경계가 명확하도록 굵은 금을 긋는 것이다. 각자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정리해서 상대방에게 명시적으로 알려야 한다. 전통적 가치인 효와 인간적인 도리 사이의 줄다리기에 말려들면 욕은 덜 먹을 지 모르나 마음의 균형은 무너진다. 모시고 살아야 하는 입장이더라도 '기본'은 하되 싫은 마음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천사표'가 되려고 애쓰는 것은 어리석다. 무의식 속으로 억지로 밀어 넣은 싫은 마음이 끝 없는 갈등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서라도 몰래 미우면 밉다고 표현하는 것이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고 서로에게 좋다.

정도언 서울대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 정도언교수는

서울대의대 졸업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미국 샌디에이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정신분석 수련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 역임 현재 한국정신분석학회 국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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