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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65>여름숲 요정 "산형과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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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65>여름숲 요정 "산형과 식물"

입력
2003.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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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락 가락 합니다. 그 비 때문에 마음도 개었다가 가라 앉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이 긴 장마가 끝나면 아이들 방학이 찾아오고, 휴가가 절정을 이룰 것입니다. 더없이 뜨거운 태양과 북적대는 사람들 속에서도 마냥 즐거운 휴가가 말입니다. 휴가계획은 잘 세우셨나요? 저는 매년 일이 겹치는 바람에 휴가 계획을 미리 세울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곤 했지요. '올해는 꼭'이라고 결심하고 전에 없이 숙소예약이라도 해놓으면 꼭 중요한 일이 생겨 고민이 많답니다. 그래도 이젠 '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생각하고 공부하러 찾아 가는 숲이 아닌 쉬러 가는 숲을 실천할 생각입니다.여름 숲에 가면, 우거진 숲과 그 잎새들은 열심히 광합성을 하며 성장을 꾀하고 있을 터입니다. 그래서 초록의 무성함 속에서 웬만한 꽃들은 자신을 표현할 방법을 찾아내기 힘이 들지요.

그래도 여름 숲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물이 있는데 바로 산형과(傘形科) 식물입니다. 이 과에 속하는 식물은 대부분 흰색 꽃을 피우는데다 작은 꽃은 마치 우산살처럼 일정한 길이의 꽃자루를 가지고 있어(왜 산형과라고 하는지 아시겠죠?)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숲 속 요정의 물건일 것 같은 작고 흰 꽃우산이 모여 좀 더 큰 우산을 만들고 이것이 모여 아주 큰 우산을 만들지요. 하나로 보면 극히 하찮은 아주 작은 꽃이 수백 수천 개가 모여 여름 숲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존재가 됩니다. 여름 숲에서 만나는 산형과 식물 중에는 참당귀, 개구릿대, 강활, 천궁, 전호 등이 있습니다. 향기가 좋고 약이 되는 공통점이 있지요. 어떤 책을 읽다 보니 이 산형과 식물 중에서 우리 말로 구태여 옮기자면 '털강활'쯤 되는 식물이 있는데, 이 식물 한 포기가 숲에서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겁니다. 흥미진진해졌습니다. 보통 이 식물의 개화기는 한달 이상 되고 때로는 여름 내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작은 꽃 한 송이의 꽃피는 시간은 1주일 정도지만 개화가 차례로 이어져 전체적으로 길어지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사실은 또 있습니다. 꽃이 처음 피는 며칠 동안은 암술은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에서 꽃가루를 방출하는 웅화(雄花·남성 꽃)이다가 이내 수술이 말라버리고 암술만 제 역할을 하는 자화(雌花·여성 꽃)로 변신합니다. 꽃차례 전체에서 이런 변신, 그것도 특별한 성 전환이 아주 일정한 방식으로 일어나는데 식물의 가장 위쪽에 있는 꽃부터 차례 차례 일어납니다. 말하자면 한 개체가 여름 동안 수그루-암그루-수그루-암그루-수그루로 성 전환하는 것이죠. 조용하고 잔잔한 꽃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피어 이렇게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한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한 사람의 성 전환을 두고도 온 나라가 호들갑을 떠는 것에 비춰볼 때 한 포기 꽃의 역동적인 변화는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입니다.

부끄럽게도 우리가 이웃나라 학자처럼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 여름 숲에도 지천으로 널린 산형과 식물 중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 식물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숲 속에서 산형과 식물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우리 꽃 드라마를 발굴해 재미있게 보는 것, 이것이 올 여름 제 휴가 계획입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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