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에는 조선의 정신이 담겨있다. 절대로 과장되거나 숨김이 없는 순백(純白)과 절제, 그리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올곧은 자세를 잃지않는 기품은 조선 왕실과 사대부들이 지향하고 실천했던 이념이었다. 보아서 아름답고 만져서 즐거우며 형이상학적 논리까지 스며 있어 '완벽한 사랑의 대상'으로 칭송돼 온 조선 백자 350여 점이 한 자리에 모였다. 호림미술관(관장 오윤선)이 11일 '호림박물관 소장 조선백자명품전―순백과 절제의 미' 특별전을 개막했다.9월30일까지 열리는 특별전에 나온 조선백자에는 걸작으로 꼽히는 백자반합(보물 806호)과 백자청화매죽문호(국보 222호) 등 국보 3점과 보물 4점이 들어 있으며 조선시대의 의식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세한도(국보 180호)도 함께 나왔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의 양반과 백자', '조선백자의 전개', '조선백자의 문양세계' 등 세 주제로 구성됐다. 먼저 백자를 통해 조선시대 양반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태호는 아기의 태를 담아서 매장했던 항아리. 영아 사망률이 높고 평균수명이 짧았던 당시 남자 아이는 가문의 대를 이을 존재였으며 태는 생명의 근원으로 간주됐다. 따라서 왕가 뿐 아니라 양반 가정에서는 태를 항아리에 넣어 길일을 택해 묻었다. 15세기에 제작된 백자태호(보물 1055호)는 맑고 투명한 담청색이 감도는 영롱한 빛깔과 세련된 형태가 돋보인다.
고려시대에 비해 다양하게 발달한 문방구는 양반들의 관직 진출의 유일한 통로였던 과거 시험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 준다. 학문 연마에 필수적인 연적은 후기로 갈수록 종류가 많아지고 문양도 다양해진다. 연적의 표면에 그려진 용 문양은 과거시험 합격에 대한 양반들의 간절한 염원을 표현했다. 사후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불교와 달리 철저하게 현실세계를 중시한 성리학의 이념은 백자반합(보물 806호)에 잘 드러나 있다. 번잡한 문양과 장식을 억제하고 안정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이 반합은 조선 백자를 통틀어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아무래도 조선백자의 독창적 미감은 17세기 달항아리에서 찾을 수 있다. 일찍이 '잘 생긴 며느리'로 비유됐던 달항아리는 단정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양반댁 며느리의 얼굴을 연상시킨다. 가격이 수억원에 이르는 달항아리는 시조시인 김상옥이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라고 표현한 백자의 순결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밖에도 17세기 백자 항아리를 대표할 만한 것으로 하얀 바탕 위에 흑갈색의 철화 안료를 사용해 용 그림을 그린 '백자철화운룡문호', 한여름 연꽃이 핀 연못의 풍경을 그려넣은 '분청사기박지연어문편병'(국보 179호)등도 관심을 끈다.
이희관 학예연구실장은 "이번 전시는 백자를 통해 조선 시대를 관통하는 미의식과 그것이 지닌 사회성과 역사성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며 백자의 우수함을 실용성과 순백의 빛깔을 살린 데서 찾았다. 그릇 표면을 새긴 청자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들어가고 잘 깨지지만 백자는 견고하면서도 절제된 미감을 충실히 표현했다는 것이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 학예연구원이 전시장을 안내하며 설명해준다.
호림박술관은 호암미술관, 간송미술관과 더불어 국내 3대 사립박물관으로 성보실업 전 회장인 윤장섭(81) 성보문화재단 이사장이 1982년 유물과 기금을 내놓아 세웠으며 국보 8점과 보물 36점을 비롯, 토기 도자기 회화전적류 등 1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개성 출신으로 국내 1세대 고고미술사학자인 고 최순우씨, 진홍섭 황수영씨 등과 절친한 윤 이사장은 요즘도 박물관 유물구입비로만 매년 30억원을 쓰고 있다. (02)858-3874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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