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해방 이후 50년 넘게 유지해 오던 파출소의 전면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파출소 3, 4개를 하나로 묶어 순찰지구대로 바꾸고 인원도 통합해 운영단위를 광역화한 것. 순찰지구대로 명명된 새로운 시스템은 현재 서울에서 서대문과 구로, 노원, 강동, 종암 등 5개 경찰서와 울산 및 제주지방경찰청에서 시범운영 중이며 하반기에는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경찰인력의 부족 등 현상황을 감안하면 파출소제도의 개편방향은 대체로 옳지만 신속출동 체계의 마련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순식간에 순찰차 4대 집결
간간이 장맛비가 뿌리던 9일 밤 11시20분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일대를 순찰하는 경찰 순찰차량에 '구기동 상명대 앞길에서 취객들이 소란을 부리고 있다'는 112지령이 떨어졌다. 26호 순찰차량으로 인근을 순찰중이던 신한석(35) 경장과 내종구(35) 경장은 즉시 차를 몰아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는 취객 4명이 서로 엉겨 붙어 근처 슈퍼마켓의 기물을 파손하는 등 난동을 부리고 있었으며 26호에 앞서 출동한 27호 순찰차량의 김진남(41) 경장과 권순석(27) 순경이 이들을 제압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취객 가운데 1명이 수갑을 채우려는 김 경장을 밀치며 옷을 잡아뜯는 등 반항하는 바람에 제압은 쉽지 않아 보였다. 상황이 어렵다고 판단한 신 경장은 바로 가세해 순찰지구대 사무소로 지원요청을 했다. 취객들의 난동은 10분도 안돼 도착한 25호와 29호 순찰차량을 합해 순식간에 출동한 4대의 순찰차량 근무자 8명에 의해 바로 진압됐고 이들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서대문경찰서로 모두 인계됐다. 김 경장은 "술취한 피의자 1명에게 수갑을 채우거나 순찰차 태우는데 적어도 3, 4명의 직원이 필요하다"며 "예전의 파출소 시스템 같았으면 이런 상황에서는 경찰관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순찰지구대 겉과 속
순찰지구대로 시범운영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과거처럼 경찰관들이 범인들에게 신체적 위해를 당하거나 총기를 빼앗기는 등의 '횡액'을 당할 위험은 크게 줄었다. 순찰지구대 사무소에서 상황에 따라 최대 5, 6대의 순찰차량을 한꺼번에 출동시켜 상황을 제압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신촌 일대를 관할하는 서대문경찰서 서부순찰지구대 장운식(42) 경사는 "순찰차량 2대에 근무자 4명으로 운영되던 과거 파출소 시스템에서는 패싸움이라도 일어나면 어떻게 장악할까 걱정이 앞섰다"며 "예전에 비해 치안유지 활동이 더욱 강화된 셈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할구역이 광역화하면서 출동시간이 지연될 가능성과 주민들의 불안감 등은 해결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예전처럼 '경찰관이 3분거리에 있다'는 점을 되풀이 강조할 수는 없게 됐다"고 실토했다. 또 "파출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신촌에서 갈비집을 운영하는 정모(45)씨는 "파출소가 없어지는 지역의 주민들은 소외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반면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홍모(40)씨는 "예전에 비해 순찰차가 자주 보여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경찰관의 근무환경은 좋아졌다. 1개조에 20여명으로 직원이 늘어 대부분 순찰지구대가 야간에 교대로 2시간씩 휴식시간을 갖는 것은 나아진 근무환경의 하나. 그러나 시범운영중인 순찰지구대 사무소가 과거 20여명의 인력이 3교대로 사용하던 파출소 건물이다 보니 인력이 70여명으로 늘어난 지금은 비좁기 그지없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2, 3명의 경찰관이 파출소를 지키고 있는 현체제는 분명 문제가 있어 광역화하는 방향은 옳다"면서도 "출동시간의 단축, 경찰관 근무여건 개선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전면시행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이왕구기자 fab4@hk.co.kr
● 서부지구대로 본 운영방식
지난 달 1일 시범운영을 시작한 서대문경찰서 소속 서부지구대의 관할구역은 연세대 앞 신촌거리 등 서대문서 관내에서 치안수요가 가장 많은 구역이다.
서부지구대는 기존 서대문경찰서 관할 파출소인 대현파출소 신촌파출소 연희파출소의 인원이 통합돼 운영된다. 기존 3개 파출소중 가장 규모가 컸던 대현파출소를 지구대 사무실로 쓰고 있다. 순찰지구대 발족에 따라 신촌과 연희파출소는 '치안 서비스 센터'로 평일 오전 7시∼오후 11시, 공휴일 오전 9시∼오후 7시에 운영된다. 치안 서비스센터는 순찰·출동 업무는 담당하지 않으며 고소·고발장 접수, 도난신고, 지리 안내, 미아 신고, 수배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순찰지구대 운영은 기존 신촌·대현·연희파출소장이 교대로 맡는다. 소장을 포함한 서부순찰지구대의 총인원은 76명. 64명이 관내 순찰업무를 담당하며 나머지 12명은 '치안 서비스' 등 행정업무를 담당한다. 순찰의 경우 기존 파출소가 운영하던 순찰차 6대, 오토바이 5대를 활용한다.
순찰조는 3개조로 운영되며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7시에 교대가 이뤄진다. 치안 수요가 많은 시기에는 일선서의 방범순찰대로부터 50여명의 의무경찰을 지원 받기도 한다.
파출소 단위때에 비해 관할 지역이 넓어졌을 뿐 기존 순찰방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 현장의 평가다. 순찰차는 집중사건(집단폭력 강도 강간 납치 등)이 발생해 동시에 출동하지 않는 한 기존 파출소의 관할지역을 정기순찰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순찰임무는 2시간 도보, 2시간 오토바이, 2시간 휴식, 2시간 순찰차의 순으로 이뤄진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파출소 개혁사와 외국사례
경찰은 1990년대 들어 2번에 걸쳐 파출소제도의 개편을 시도했다. 그러나 번번이 주민반발에 부딪쳐 실패하고 말았다.
91년 처음 시도됐던 개혁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3∼5개의 파출소를 통합하고 나머지는 아예 폐쇄하는 광역파출소 제도로 '파출소가 사라지면 지역치안은 누가 책임지나'라는 주민반발에 바로 시범운영을 중단해야 했다. 99년 시도된 기동순찰제 모형은 일본에서 벤치마킹한 것으로 파출소에 최소 인력(3, 4명)을 둔 채 나머지 인력을 경찰서 단위에서 통합해 운영한 것. 그러나 역시 파출소가 축소되는데 대한 주민반발이 거세 중도하차했다.
이번에 추진중인 순찰지구대 시스템은 파출소를 그대로 두면서 중심파출소에 기동순찰대를 조직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시도됐던 제도의 절충형에 가깝다. 경찰청 관계자는 "주민들의 불안감으로 인해 파출소를 아예 없앨 수는 없다"며 "앞으로도 '파출소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주민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최대 과제"라고 실토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순찰지구대 시스템은 독일의 '지구경찰서' 제도와 상당히 흡사하다. 경찰청 관계자도 "제도개혁을 연구하는 단계에서 독일식을 많이 참조했다"고 밝혔다.
독일의 경우 하나의 경찰서 내에 파출소 조직을 가진 다수의 지구경찰서를 두고 있다. 그러나 파출소에서는 순찰기능을 담당하지 않고 일반 민원업무만 처리하며, 순찰 등 방범활동은 지구경찰서가 별도로 운영하는 순찰팀이 담당한다.
지구경찰서는 우리의 순찰지구대 사무소에 해당하고 파출소는 우리와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셈이다.
미국과 영국·캐나다 등에는 파출소가 아예 없다. 경찰서 하부조직으로 방범순찰을 담당하는 기구(미국의 경우 Operation Bureau)가 따로 있다.
일본은 경찰서와 파출소에서 방범순찰을 같이 한다. 지역경찰의 순찰활동은 경찰서의 지역과에서 주관하면서 최하위 경찰조직으로 따로 두고 있는 것. 도시지역에는 '교번', 농·어촌지역에는 '주재소'라는 파출소형태의 조직을 두고 경찰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김정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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