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과 민생(民生)이 이처럼 참담하게 대면할 수 있을까. 한쪽에선 건설업체로부터 분양사기를 당한 서민들이 울부짖고, 한쪽에선 그 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정·관계 인사들이 잇달아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그들이 받은 돈은 서민들의 피맺힌 돈이니 입이 열 개인들 무슨 말을 하겠는가.굿모닝시티 분양 사기사건은 부패한 정부, 부패한 정치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바로 국민이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기업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돈이 정·관계로 들어갔음이 밝혀질 때마다 우리는 '그 돈은 결국 국민의 돈'이라는 말을 썼다. 그러나 이번에는 돈을 떼인 피해자들이 바로 눈앞에서 아우성치고 있으니 '결국'이란 말을 붙일 필요도 없는 '국민의 돈'이다.
굿모닝시티 윤창열 대표가 어떻게 사업을 일으키고 몰락했는가를 추적한 신문기사를 읽으면 봉이 김선달이 울고 갈 지경이다. 지방에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온 그는 수천억원을 주무르는 건설업자로 변신하여 승승장구하다가 사기횡령 혐의로 구속됐는데, 그의 승승장구를 가능케 한 것은 물쓰듯 뿌린 막대한 뇌물과 제도의 허점이었다.
그는 '부패 왕국'의 생리와 체제의 약점을 꿰뚫고, '뇌물의 힘'을 확신했으며, 그것을 무기로 사업을 키웠다. 그는 상가의 경우 토지를 매입하지 않고도 선분양이 가능한 건축법의 허점을 이용해 땅도 사지 않은 채 분양에 나섰고 수천억원의 분양대금을 챙겼다. 건축허가 신용평가 대출 등 모든 과정에서 뇌물을 뿌렸고, 횡령 등의 혐의로 입건되자 경찰에도 돈을 줬다.
정대철 민주당 대표는 자기 지역구 안의 '손 크고 수완좋은 사업가'인 윤씨로부터 4억 여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정치생명이 위태롭게 됐다. 그는 자신이 받은 돈과 대선자금을 연결시켜 자기 혼자 '희생양'이 되지않겠다는 전략을 쓰고 있다.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에 맞서 정 대표에게 정계은퇴 압력을 가하며 불똥이 대통령에게 튀지 않도록 '방화벽 쌓기'전략을 쓰고있다.
어떤 전략을 구사해도 정 대표는 물론 노 대통령도 이번 스캔들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정 대표가 받은 돈 일부를 영수증 처리조차 안 한 것은 법을 위반한 것이고, 피해자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도 면하기 어렵다. 대통령 역시 도마뱀 꼬리 자르듯 아무리 꼬리를 잘라내도 굿모닝시티의 돈이 한푼이라도 대선에 쓰였다면 떳떳할 수 없다. "나는 대선자금 조성에 일체 간여하지 않았다"는 말로 면죄부를 받기는 어렵다.
정 대표는 대선 때 기업체 등으로부터 받은 자금이 돼지저금통을 제외하고 200억원 가량 된다고 말했다가 다시 140억원 정도라고 말을 바꿨다. 선대위 총무본부장을 지낸 이상수 사무총장은 기업에서 100억원을 모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돼지 저금통 모금 80억원을 포함해 140억∼150억원 가량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돼지저금통 모금액 80억원도 믿기 어렵다.
개혁을 부르짖어 온 여당대표가 정치자금의 수렁에 빠지고, 깨끗한 선거를 치렀다고 자부해 온 노 대통령이 대선자금 의혹에 휘말리는 것을 보면서 새삼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제도개혁 없이, 돈 드는 정치풍토의 개선 없이 정치부패를 청산하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불합리한 인허가 제도와 법의 허점을 그대로 둔 채 뇌물을 추방하겠다는 것도 공허한 소리다.
정 대표는 즉각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노 대통령도 대선자금 유입이 밝혀지면 깨끗이 사과해야 한다. 개혁에 대해서도 보다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 개혁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제도와 풍토에서는 너도 나도 자칫하면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개혁의 본질은 제도 개혁이지 섣부른 인물청산이 아니다.
정치자금과 민생이 이처럼 악연으로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정치가 마침내 폭발하면서 그 파편이 서민들의 행복을 파괴한 것이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줘야 할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사기치는 악덕업자의 돈을 받고 그를 도왔다면, 그러고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이 나라 정치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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