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윌리엄 어윈 엮음·이운경 옮김 한문화 펴냄 1만5,000원게임, 비디오, 음반 뿐 아니라 책으로도 묶여 나온다는 점에서 '매트릭스'는 영화를 넘어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 현상이다.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가 출간된 데 이어 '매트릭스로 철학하기'가 나왔다.
전자가 대중적 전방위 문화비평서라면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는 플라톤에서 데카르트, 칸트, 마르크스, 라캉에 이르는 서양철학사의 거인들을 초대한 철학교양서이다. '매트릭스'를 본 관객이라면 익히 던졌을 법한 질문을 해당 철학자와 연결시키는 방법이 돋보인다.
미래의 인간통제 시스템 매트릭스에 갇혀있는 줄 모르던 주인공 네오의 처지는 플라톤의 '동굴의 수인(囚人)'에 비유될 수 있고,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느냐며 고민하는 네오의 독백은 데카르트의 회의론을 방불케 한다. 우리 삶이 악령이 만들어낸 커다란 기만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데카르트와 네오, 그리고 관객은 이 지점에서 모두 철학자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매트릭스'를 보며 느꼈던 궁금증은 서구의 위대한 지성들이 평생 파묻혀 지내던 질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17 명의 필자는 사이퍼가 먹던 가상의 스테이크, 네브카드네자르호 선원들의 형편 없는 식사, 인간 발전소 장면 등 '매트릭스'의 철학적 질문에 대해 각기 다른 답안을 내놓는다. 대중적 SF 영화 한 편에 정신분석학, 실존주의, 유심론, 유물론, 포스트모더니즘 등 대학의 철학과 이수 과목을 망라한 듯 다양한 사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사이퍼처럼 편안한 가상의 삶을 택할 것인지, 네오처럼 실제 체험을 택할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나름대로의 답을 찾을 수 있다. 답안의 수준은 당연히 모두 다르다. 입문서 없이 곧바로 들어가기 어려운 글도 적지 않고 평이한 답변에 머문 글도 많다.
라캉적 관점에서 '매트릭스 이면의 진실한 세상이라는 것 자체도 허구'임을 지적한 지젝의 글이나, '노동한 만큼 보상 받으니 실재 세계보다 매트릭스가 낫다'는 마틴 대너헤이와 데이비드 리더의 글 등은 힘들여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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