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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수메르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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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수메르 신화

입력
2003.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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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수 지음 서해문집 발행·1만9,500원"이라크는 전쟁과 가난에 시달리는 척박한 땅이지만 그 곳에서 고대 역사시대를 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산은 인류의 큰 보배입니다. 기원전 5000년께 농경을 시작한 그곳의 신화는 인근 동서양은 물론 우리나라에서까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최근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신화를 우리말로 옮기고 설명한 '수메르 신화'를 펴낸 조철수(53)씨는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한 고대 근동 문화 전문가이다. 수메르 문명이 언뜻 낯설긴 하지만 국내에 전혀 소개되지 않은 건 아니다. 영웅 길가메시 이야기를 다룬 '길가메시 서사시' 관련 서적이나 가람기획에서 번역이나 국내 연구자 집필로 펴낸 수메르 문화 소개서도 몇 권 있다.

이 책은 점토판에 남아 있는 상태의 수메르 신화를 직접 번역했다는 점에서 우선 주목할 만하다. 기원전 3000년을 전후해 번성한 수메르 문명권의 신화에 대한 국내 첫 정역(定譯)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이스라엘 히브리대에서 20년 넘게 중동 고대어를 공부하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다니다가 생각을 고쳐 철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철학과는 남는 자리가 없어서 대신 신학과로 가게 됐고, 거기서 고대 이스라엘 문명 형성에 관심을 갖고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때가 1976년이다. 조씨는 예루살렘 히브리대 아시리아학과(현재는 고대 근동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2000년 귀국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전임 강사로 강의했다.

읽어서 해석할 수 있는 근동의 고대어만 열 가지 가깝다. 수메르어는 물론 성서 히브리어, 악카드어, 히타이트어, 우가리트어, 페니키아어, 가나안어, 고대 이집트어, 고대 아랍어 등이다. "히브리대에서 중근동 고대 문화를 전공하려면 1년 여 과정으로 이런 언어를 익혀야 합니다. 저는 원전 번역에 도전할 욕심으로 4년 가까이 더 공부했습니다."

이번 책은 96년에 같은 제목으로 나왔으나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이라크 박물관 유물 약탈 사건 등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세간의 관심거리가 된 데 맞춰 분량을 2배 가까이 늘리고 내용을 손 봐 다시 냈다. 책에서 조씨는 늘 노역만 하는데 불만을 품고 시위에 나선 계급이 낮은 신들을 달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는 독특한 창조론과 노아의 홍수 이야기의 원형인 '아트라하시스의 태초 이야기' 등을 소개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원전의 20% 정도를 번역해서 담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위대한 인물은 성(聖)혼례라는 연례 행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남성 통치자와 여사제가 신년에 12∼14일 동안 지구라트가 부르는 여사제 거처에서 함께 지내는 이 의식은 정치와 제사의 화해와 일체를 유도하기 위한 의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서 나온 자식들은 비록 서자지만 길가메시처럼 위대한 영웅으로 메소포타미아 역사의 전환점마다 큰 역할을 한다. "환웅이 서자로 나오는 단군신화도 페르시아를 거친 이 신화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씨는 이처럼 수메르 등 고대 근동 신화와 우리 신화·설화의 관계를 살핀 '한국 신화의 원형을 찾아서'(가칭·김영사 발행)도 곧 낸다. 중국과 몽골 등 북방 신화와의 연관성만 따져 온 우리 신화의 새로운 면모를 살필 기회이다. 또 서강대 강의 중 틈틈이 '길가메시 서사시'와 '함무라비 법전' 완역을 하고 있으며 히브리대와 이스라엘 학술원의 지원을 받아 82년 시작한 수메르어 사전 편찬 작업도 몇 년 사이에 끝낼 작정으로 고삐를 조이고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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