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곳은 파일명 '장미목'이 화제다. 독일인들에게 장미목이란 고귀하고 향기로운 목재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 귀족적 이름의 장미목은 유감스럽지만 구 동독 국가정보부 슈타지(SSD) 산하 해외정보중앙본부(HVA)의 극비문서 명칭이다. 구 동독 건국 이듬해인 1950년부터 멸망의 해인 1989년까지 해외 첩보활동이 담긴 이 막대한 정보 파일은 35만개의 마이크로필름이 담긴 381개의 CD롬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 통일 직전 미국 CIA는 소련 KGB의 도움으로 분단 독일과 동구권 정보가 담긴 이 역사적 문서를 손에 넣었다고 한다.'장미목'이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중요한 것은 이 파일 속에 구 동독 첩보원으로 일했던 서독인 1만2,000명의 이름, 특히 동독 멸망 직전까지 동독 첩자로 일해 온 3,500명의 기록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채집된 정보는 선별돼 당시 동독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의 탁자에 올랐다. 통일 독일 시민들은 냉전과 분단 시대의 불길한 유산인 이 문서가 부디 마지막 상처, 마지막 악몽이길 기대하고 있다.
파일명 '장미목'은 이곳의 스테디셀러인 마르쿠스 볼프의 비망록 '정보전의 지휘자'를 생각나게 한다. 분단 독일에서 신화적 인물인 '얼굴 없는 사나이'로 불린 그는 무려 30년 간 구 동독 해외첩보국 최고 수뇌이자 두뇌로 활약했다.
당시 서독정보부(BND)가 이 유능하고 탁월한 정보 지휘자의 사진 한 장도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명석하고 확신에 찬 문체로 서술된 이 비망록에는 그가 자신이 파견한 간첩을 통해 매일 서독의 정보를 진공청소기처럼 동독으로 빨아들이는 충격적 장면이 등장한다. 이 비망록을 채우고 있는 세련된 문장은 그의 부친이 소설가 프리드리히 볼프였다는 것을 알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한편 소설 '독일어 시간'으로 유명한 지그프리트 렌츠(77)의 신간 장편 '분실물센터'가 막 출간됐다. 그는 24세의 분실물센터 직원을 통해 생의 도상에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자들, 생의 누락자들, 난파한 인생이라는 배의 조난 과정을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젊은 주인공이 정의의 광신자이며 고난받는 자를 돕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지독한 불치병 '사마리아인 콤플렉스'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분실물센터에 찾아온 생의 조난자들을 도우려는 그의 광적 헌신은 '슈퍼맨'을 떠올리게 한다. 독일은 지금 작가 렌츠를 통해 그들의 역사 속에서 분실된 찬란한 본질을 점검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의 새 시집 '최후의 춤들'도 9월 첫날 출간될 예정이다.
강 유 일 소설가 라이프치치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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