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마커시 지음·차익종 옮김 당대 발행·1만5,000원"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1964년 2월25일 캐시어스 클레이가 소니 리스턴을 꺾고 프로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그는 축하잔치 대신 흑인 빈민가로 가 인권운동가 말콤 엑스 등과 저녁을 보내고 이튿날 자신이 이슬람인이며, 백인들을 위한 챔피언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슬람 교단에 가입해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금기로 여겨졌던 인종차별 문제를 서슴없이 거론하며 백인들을 쏘아붙였다. 백인들은 베트남전 징집영장을 발부하는 것으로 대응했고, 알리가 이를 거부하자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했다.
알리는 그러나 3년 뒤 조지 포먼을 누르고 다시 챔피언에 오르는 등 헤비급 사상 최초로 세 차례나 챔피언 벨트를 거머쥠으로써 신화적 인물로 떠올랐다.
이 책은 알리의 전성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저자가 젊은 날의 우상이었던 알리와 그를 낳은 미국의 60년대 상황을 스포츠 정치학의 관점에서 기술한 것이다.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것은 99년. 파킨슨씨 병을 앓던 알리가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식 성화 릴레이의 최종 주자로 나왔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 시점이었다. 저자는 그러나 이는 알리의 진면목이 아니라면서 치열하게 백인들과 대결했던 60년대의 알리를 되살리고 있다.
60년대 미국은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무저항주의, 말콤 엑스의 흑백 분리주의, 전세계 흑인들의 연대를 강조한 범아프리카주의 등 흑인 민권운동이 급격하게 분출한 시기였다. 세계적으로도 베트남전 반대운동, 식민지 해방운동 등 미국의 패권주의에 저항하는 조류가 형성돼 있었다. 알리는 이 같은 시대정신을 스포츠에서 실천한 인물이었다.
야구의 재키 로빈슨, 권투의 플로이드 패터슨 같은 흑인 선수들이 백인이 바라는 모범적인 '엉클 톰'역할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알리는 링에서의 현란한 권투 솜씨만이 아니라 TV토크쇼 등 미디어를 통해 현란한 말솜씨로 백인들에게 대들었다. 책은 알리가 60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고향의 백인 전용식당 입장을 거부당하자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버릴 때부터, 중요한 고비마다 내린 결단의 순간을 전후 맥락과 함께 살피고 있다.
알리는 자신에게 흑인의 대표자라는 굴레를 씌우려는 시각을 거부했으며 지도자 노릇, 이데올로기도 싫어했지만 상황에 따라 정치의 세계에 점점 끌려 들어갔고 흑인의 대표자 역할을 하게 됐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사업 수완이 능란한 흑인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과 알리의 정신을 뚜렷이 대비시킨다. 인권운동가들이 동남아에서 저임금으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다국적기업 나이키의 문제를 쟁점화시키려 도움을 청했을 때 조던은 이를 거부했다. 이 책은 자본이 장악하는 스포츠계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라고 촉구한다. 원제 '구원의 노래'는 레게 음악의 선구자로 아메리카 대륙 전체 흑인의 연대를 촉구했던 밥 말리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