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광 지음 이가서 발행·9,000원김종광(32·사진)씨의 짧은 소설들은 재기로 반짝반짝 빛난다. 빠르고 가뿐하다. 성긴 부분도 눈에 띄긴 하지만, 읽히는 속도를 늦추게 하지는 않는다. 원고지 5장짜리부터 92장짜리까지 몸이 가벼운 이야기 27편이 묶였다.
이력서를 낸 학원 강사는 "다음주 월요일까지 뱀을 좋아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교실에 들어가보니 개와 토끼, 원숭이, 앵무새, 소와 돼지에 교탁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는 뱀까지 앉아 있었다. 2007년의 이 강사는 금수에게 한글을 가르치느라 죽을 맛이다. 공부하기 싫으냐는 질문에 "할 만해유"라고 답하는 짐승의 너스레는 김씨 소설의 능청스러운 문체를 보여준다('2007년, 학원 강사'). 라면, 소시지, 통조림, 어묵, 냉동 돈가스 등이 (주)즉각식품 모델 선발대회에 참가했다. 마지막 참가선수인 인스턴트 쌀밥이 1등을 차지하자 라면은 기절해 버렸고, 소시지는 '명백한 조작'이라며 성토하고 다녔다('(주)즉각식품 모델 선발대회').
표제작 '짬뽕과 소주의 힘'은 아버지 이야기다. 고향을 떠나 대학을 다니고 전투경찰로 복무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낮에는 농사일을 돕고 밤에는 소설을 썼다. 등단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발표하는 소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으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한 달에 몇 번씩 아들을 데리고 중국음식점으로 가기 시작했다. 짬뽕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그렇게도 나오지 않던 말이 술술 나왔다. "아들은 짬뽕과 소주의 힘을 알게 되었다." 작가가 독자에게 한 주문처럼 김씨 소설은 힘차게 빨리 읽다가도 늘임표를 찍고 싶을 때가 있다. 이렇게 시큰한 때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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