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공기와도 같고 빛과도 같다. 만질 수 없어 늘 무시당하지만 그가 다치면 삶이 치명적 상처를 입는다. 그 점에서 평화는 생명의 질서다. 생명! 천하를 얻어도 그가 가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는 세상의 중심이다. 그래서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라고도 하고 '그리스도, 세계의 평화'라고도 한다. 빛처럼 환해지는 평화에 대한 기원이다.우리는 '한반도 평화'가 화두인 절박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강조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평화가 허술해서 생명들이 불안하다는 뜻이다. 2003년 7월은 한반도가 정전협정을 맺은 지 50년이 되는 해다. 정확히는 7월 27일이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넘게 끌어온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 거기에서 내 어머니는 느티나무처럼 듬직했던 아버지를 잃었고 꽃보다 아름다운 동생 셋을 잃었다. 50년이 지나 이제 십대의 소녀는 65세의 할머니가 되었지만 어머니는 그 때를 말할 때면 아직도 말이 빨라지고 급해진다. 시간이 그렇게 지나도 어제 일처럼 또렷하기만 한 일이 있는 모양이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널린 입 속의 검은 잎들, 가까운 이를 그런 주검으로 대면해야 한다면! 다른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단언하는 일이 없는 어머니가 단언한다. 전쟁은 악 중의 악이고 평화는 의무 중의 의무라고.
이제 평화는 의무다. 평화가 의무라면 우리는 "상기하자 6·25"를 넘어 "상기하자 7·27"이 되어야 한다. 전쟁발발일인 6월 25일을 강조하면 동족을 증오하고 비난함으로써 갈등을 증폭시키게 된다. 당연히 "상기하자 6·25"는 냉전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53년 7월, 정전협정을 맺은 그 날의 의미를 강조하면 평화의 의미를 깊이 새기게 된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되갚아야 할 원한으로서가 아니라 평화에의 절박한 요구로서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6·25를 상기한다는 것은 억울하고 황당하게 입 속의 검은 잎이 된 내 외할아버지, 내 외삼촌들의 적이 누구냐를 묻고 이를 악물어야 하는 것이다. 동족끼리 싸우고 죽이고 경계하고 갈등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사이, 어떤 주변국은 우리를 무기판매의 호구로 여기고 어떤 주변국은 우리에게 불평등한 한미방위조약을 강요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불평등한 조약의 대명사가 된 바로 그 조약이 한미방위조약 아닌가!
국력에도 걸맞지 않고 문화적 자존심에도 깊은 상처를 입히는 바로 그 조약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고, 어떤 주변국에서는 교과서까지 왜곡하면서 무시해도 좋은 나라임을 보여주는 이유가 뭘까? 그런 홀대를 받는 이유가 바로 냉전적 반공의식으로 무장했기 때문이 아닐까.
평화는 생명의 조건이다. 한반도 평화는 우리 삶의 조건이다. 재선 컴플렉스가 있는 부시가 이라크 다음에 노릴 새로운 먹거리는 어디일 것인가?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란, 시리아, 북한 중 한 곳일 거라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다니는 세력의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한반도 평화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가 이뤄야 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다. 그 노래가 그냥 불러보는 겉도는 노래가 아니라면 총과 포를 쏴대기 시작한 날이 아니라, 저렇게 총과 포를 쏴대면서 어떻게 가닥을 푸나 할 정도로 가혹한 원한을 만들었던 그 전쟁을 마침내 접은 날, 50년 전의 바로 그 날, 1953년 7월 그날의 의미를 새기고 또 새겨야 한다. 함께 살아야 할 동족을 더 많이 죽인 게 무용담이 되고, 그런 과거가 부끄러운 것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기득권을 누려온 시대를 청산해야 한다.
이 주 향 수원대 인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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