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중국 방문 성과에 대한 국내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일차적인 비판은 방중기간 북한 핵 문제에 관한 명확치 않은 행보에서 비롯됐다. 이를테면 노 대통령이 '다자간 대화'를 '당사자간 대화'로 언급한 것, 확대 다자회담 개최에 관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합의했다'는 식으로 자료를 미리 배포한 것 등이 여론의 도마에 올라 구설수를 자초했다.
이런 실수나 정부 부처간 팀워크 문제 외에, 회담 자체의 성과에 대한 평가도 별로 좋지 않다. 정상회담이 끝난 지 만 하루가 넘어서도 공동성명 발표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배경에는 대만문제를 비롯해 여러 사안에서 한중간에 심각한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이 것은 양국간 상호 이해 및 신뢰 증진을 도모하려던 이번 방문의 의의를 크게 퇴색시켰다.
특히 북한 핵 문제에 관한 공동성명 내용이 향후 회담 형식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이 '양국은 베이징 회담에서 시작된 대화의 모멘텀이 지속되기를 희망한다'는데 그침으로써 오히려 합의 수준을 실제보다 더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이번 방중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협력을 유도하는 데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역시 기대 이하의 결과라고 하겠다.
또한 북한에 대한 제재 및 추가적 조치에 관해 합의한 바 있는 대미, 대일 정상회담 때와 달리, 이번 대중국 정상외교에서는 평화적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만을 강조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향후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당국은 우리 외교가 한층 세련되기를 바라는 이런 비판적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번 방중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하는 점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중국 방문의 성과는 중국에서 가지고 온 당장의 선물보따리 속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방중 성과는 정상회담을 보고 느낀 우리들의 생각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곰곰이 되짚어 그 의미를 반추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일본에 이어 이루어진 이번 중국 방문은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 대외정책 전반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주변 4강 중 우리와 '코드'가 가장 잘 맞는다는 중국이 이번에 보여준 지지와 협력의 수준은 우리가 당면한 외교적 과제가 얼마나 막중하고 넘어야 할 산이 또 얼마나 많은지를 자각케 한다.
중국과의 관계 역시 또 하나의 게임일 뿐이다. 기실 중국은 이번 한국과의 회담에서 이미 다자간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북한이 느끼는 안보우려를 해소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 역시 북한에 대한 배려이면서 한편으로 미국에 대한 메시지 전달의 의미도 담고 있다. 분단국 한국을 통해 대만 문제에 대한 자국의 강한 입장을 널리 천명하려 한 것도 한중 정상회담이 한중간의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도로 국제화되고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북한 핵 문제의 해법에 있어서 구호로는 다자틀을 요구하면서도 실제는 양자 관계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은, 여전히 한중 수교 당시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중국에 대한 우리의 문제의식이다. 중국의 눈부신 발전이 우리에게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는 생각이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경제적 낭만주의라면, 아직도 중국을 북한문제의 해결사 역할에 고정시켜 놓고 있는 것은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외교적 질곡이다. 한국 외교가 북한 문제를 넘어서 보다 큰 비전을 가질 때 대중(對中) 정책 역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전 성 흥 서강대 교수·중국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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