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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림]인터넷 동호회 "네멋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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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림]인터넷 동호회 "네멋30"

입력
2003.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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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밤 한강 선유도공원 원형극장. '시민과 함께 하는 네 멋대로 해라 무료상영회'라는 이색 행사가 열렸다. 인터넷 동호회 '네멋30' 회원 300여 명이 MBC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방영 1주년(지난해 7월3일 첫방송)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산책길에 나선 시민들까지 가세해 작은 원형극장을 가득 메운 행사가 열린 선유도공원은 이 드라마의 마지막 회에서 주인공 경이 콘서트를 열고 휴대폰을 통해 사랑하는 복수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장면을 찍었던 곳이다.'네 멋대로 해라'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수(양동근)와 경(이나영)이 주고받는 대사가 왜 그렇게 감동적인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전직 소매치기와 인디밴드 멤버의 사랑을 그린 '네 멋대로 해라'는 컬트적 요소가 다분한 드라마다.

등장인물의 거칠지만 솔직한 대사, 젊음의 혼돈과 방황을 사실적으로 그린 스토리 등 지난해 이맘 때 이 드라마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 있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인터넷 동호회 '네멋30' 회원들은 밤마다 다음 카페(cafe.daum.net/AsYouLikeIt30)에 모여 드라마의 감동을 두고두고 음미한다. 처음에는 동호회원들의 주축이 30대여서 '네멋30'이란 이름을 붙였지만 이제 회원들은 나이를 초월한다. '네멋30'은 이제는 중고생부터 40대 부부까지 회원 수가 무려 1만6,000여 명에 달하는, 열광적인 마니아들이 둥지를 튼 동호회다.

"'네 멋대로 해라'때문에 지난 1년을 웃고 울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드라마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을 누리는 데는 한계가 있더군요. 하지만 그렇게 드라마를 사장(死藏)시키기는 아까웠습니다." 상영회를 기획한 회원 풋어른(29·고시생)은 자족적인 드라마 동호회에 그쳤던 '네멋30'이 시민과 함께 하는 행사를 마련한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방송 후 1년이 지났지만 '네멋30' 회원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드라마는 종영과 함께 잊혀지기 쉽다는 통설을 보기 좋게 깨트리더니 이번에는 그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그들만의 세계 밖으로 나온 것이다.

김현지(25·여·학생)씨는 "지난해 방송이 나갔을 때는 채팅창에서 전날 방송한 드라마 대사를 번갈아가며 외우는 '대사놀이'가 유행했고, 인터넷으로 드라마를 여러 번씩 보는 것도 부족해 대사만 녹음, 이어폰을 꽂고 다니면서 감상하는 사람도 생겨났을 정도"라고 당시 열기를 소개했다.

이들은 왜 '네 멋대로 해라'에 열광하는 것일까. "근래 보기 드문 솔직한 드라마였기 때문입니다. 아름답고 예쁜 주인공이나 전형적인 선악구도 대신 현실에 있을 법한 얘기를 있는 그대로 담아냈어요. 대사도 문학적으로 포장하기보다 조금 거칠더라도 쉽고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했지요. 무엇보다 드라마를 통해 현실의 우리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로웠습니다."(허종·24·KBS아카데미 1기생)

여느 드라마 동호회와 달리 '네멋30'은 이 드라마를 추억하고 즐기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속출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네멋투어'라고 불리는 촬영현장 순례. 드라마가 끝난 뒤 '네멋30' 회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하나 둘씩 촬영 장소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복수와 경이 자주 만나고 헤어지는 버스정류장으로 나왔던 서울 마포노인복지회관 앞 택시 정류장은 회원들 사이에 명소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곳에는 벽면 가득히 팬들의 사연이 적힌 쪽지들이 채워져 있고, 주인공 사진과 드라마 대사까지 붙어 있다. 주 촬영 무대였던 홍익대 일대에서 '미래가 복수를 바래다 주던 계단' '경이가 복수 손 씻어주던 곳' 등을 찾아가는 법을 소개하는 글과 사진도 사이트에 올리고 있다.

올해 초 출시된 '네 멋대로 해라' DVD가 빛을 보게 된 것도 '네멋30'의 역할이 컸다. "드라마의 DVD 제작은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는 것이 업계의 통설이에요. 하지만 회원들이 일일이 MBC와 제작사를 찾아 다니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DVD를 제작해야 한다고 압박했지요."(허종) '네멋30' 회원들은 결국 DVD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감독판(디렉터스 컷)을 제작하고 NG장면, 메이킹 필름, 스턴트 장면 등을 부록으로 첨부하자는 아이디어를 관철시켰다. 드라마 동호회가 적극적으로 작품의 생산 과정에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드라마 대본과 감상평 등을 엮은 1주년 기념 책자 출간도 앞두고 있다.

"'네멋30'은 단순한 팬 사이트가 아닙니다.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란 공통점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서로 마음을 나누는 곳이지요. 주위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지만 앞으로는 '네 멋…'이 주었던 감동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습니다."(풋어른)

매주 토요일 하루 3편씩 상영되는 '네 멋대로 해라' 무료 상영회는 8월16일까지 계속된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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