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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철학자 정화열 교수 내한 강연/"유교와 현상학 "몸강조" 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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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철학자 정화열 교수 내한 강연/"유교와 현상학 "몸강조" 상통"

입력
2003.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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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철학'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재미동포 철학자 정화열(71) 미국 모라비언대 교수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청으로 내한했다. 정 교수는 9일 오후 정문연 대강당에서 '중화주의, 유교, 그리고 실존주의 현상학―왕양명을 중심으로'를 강연한 데 이어 '예술, 몸의 정치, 그리고 폭력의 문제'(11일) '자연의 미학:풍수사상의 새로운 이해'(14일)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국학'(15일) 등 모두 네 차례 강연한다. 시각과 이성, 남성 중심의 서양철학 전통에 반기를 들고 감성과 여성성, 생태주의에 주목해 온 그가 동양사상에 대한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첫 강연에는 정용화(연세대) 조중빈(국민대) 이동수(경희대) 정인재(서강대) 김연민(미 하버드대) 김형효 한형조 정윤재(이상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등 학자 40여 명이 참석했다. 영어로 진행된 강의 통역을 맡은 연구원 박현모 연구교수가 첫 강연을 요약했다. /편집자 주

"유교사상과 실존주의 현상학은 다 같이 이성이 아닌 몸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몸이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만나서 대화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운명적으로 몸을 통해서만 사회성을 획득할 수 있다."

강의는 역시 '몸'으로 시작됐다. 정 교수는 왕양명이라는 중국 사상가를 통해 데카르트의 이성중심주의를 비판하며 몸의 복권을 시도했다. 인식론에서부터 왕양명은 데카르트와 다르다. 데카르트의 이성(理性)이 나를 대상화하여 의식하는 '주관(主觀)의 앎'인데 반해, 왕양명의 양지(良知)는 자연으로 존재하는 양심적인 '주체(主體)로서 앎'이라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물 속으로 기어 들어갈 때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지각이요 살아있는 양심이지, 이성이 몸과 분리해 독자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정 교수는 삶과 실천의 문제를 통합해 접근하면서 실천을 더 강조했다는 점에서 왕양명이 주희를 극복했다고 본다. 외적인 우주의 원리(理)를 상정하고 격물(格物)을 통해 그 원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 주희와 달리, 왕양명은 그 원리와 앎이 분리되지 않은 채 우리 몸에 존재하는 양지이며 이는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살아있는 지각과 실천적 지식의 문제를 강조하는 양명학은 곧 현상학의 문제 의식과 닿아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주장이다. 메를로 퐁티 등 실존 현상학자들의 지각과 생활세계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객관적 사실의 설명이 아니라 '인식되는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인 현상학에서는 의식을 중시한다. 그런데 의식은 늘 '무엇에 대한 의식'으로 표현되듯 지향성이며, 그 지향성은 사물에 대한 외적인 지향과 함께 자신에 대한 내적 지향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정교수가 양명학의 지식이론이 현상학의 지향성이론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 교수는 "중국에는 철학이 없다"는 헤겔 식 편견을 극복하고, 왕양명의 실천철학이 세계철학의 내적 성숙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양철학은 과도하게 실천보다는 사유를 강조해 왔으며, 그 결과 생활세계로부터 분리된 관념론으로 흘러갔다. 후설과 하이데거가 '생활세계'와 '세계 내 존재'로서 인간을 역설한 것도 이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한 것이다.

정 교수는 특히 양명학을 비롯한 유교 사상의 핵심어인 성(誠)과 신(信)이 말과 행동의 합일을 강조하는 유교 사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밝혔다. "군주는 필요하면 약속을 어길 수 있다"고 말하는 마키아벨리적 태도와 달리 "약속한 것은 죽는 한이 있어도 지킨다"는 게 중국 문명권의 사유 방식이다. 이러한 책임윤리와 언어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 는 동양사상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성숙한 철학으로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강의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몸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무작정 몸의 감성을 해방시키면 그에 따른 혼란과 무질서는 어쩌자는 것이냐" "양지의 실현을 가로막는 요소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지적이 있었다. 한형조 정신문화연구원 교수는 "공자와 주희가 강조한 학습의 문제를 너무 경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현모 정문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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