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 격변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홍콩 시민 5만여명은 9일 입법회 앞에서 둥젠화(董建華·66) 행정장관의 사퇴와 행정장관 및 내각 의원들에 대한 직접선거 실시, 시민들의 참정권 확대 등을 요구하며 평화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13일에도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50여만명의 항의 시위 등 여론에 떼밀려 둥 장관이 국가안전법 입법 추진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한지 이틀만에 사태가 민주화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안전법 반대 시위의 성공이 민간인권전선을 비롯한 인권단체들과 민주당 등 민주화 세력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증거이다. BBC 방송은 9일 "홍콩과 중국 정부가 두려워하는 것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숫자가 아니라, 시민들이 자신의 힘으로 정부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점"이라고 전했다.
국가안전법 연기 발표로 소폭이나마 지지도 회복을 기대했던 둥 장관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사태가 진행되는 모습이다. 둥 장관은 9일 기자들과 만나 "나의 내각이 엄청난 도전에 직면했다.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홍콩 언론들은 둥 장관이 전면적인 내각 개편으로 민심 수습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효과는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그의 세력 기반이었던 친 중국 성향의 자유당과 민건련(民建聯) 등이 이미 등을 돌렸고, 중국도 7일부터 중간 간부 수십명을 홍콩에 파견해 둥젠화 내각에 대한 각계의 민심을 파악하는 등 그의 통치 능력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가장 위기를 느끼는 것은 중국이다. 홍콩의 민주화 바람은 중국 대륙은 물론 대만의 민주화 요구를 자극할 수 있다. 또 지난 달 '대만문제 영도소조' 조장을 맡아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통일 문제를 사실상 직접 관장하게 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에게도 큰 부담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를 조기진화하지 못할 경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이후 후진타오 정권에 대한 최대 시련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언뜻 보기에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임기가 4년 남은 둥 장관을 퇴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중국이 1국2체제 정책의 실패를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 된다. 또 97년 반환 시점부터 50년 동안 홍콩의 자치를 인정한다는 반환 협정을 어기고 중국이 홍콩 정부를 사실상 조종해 왔다는 안팎의 비난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때문에 중국이 둥젠화 내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올 안에 국가안전법 입법을 강행할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 중국 외교부는 9일 "홍콩인들은 둥 장관을 중심으로 단결해 역경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콩의 싱크탱크인 '시빅 익스체인지'의 크리스틴 로 회장은 "중국은 결코 시민의 힘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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