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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 거동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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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 거동 수상자

입력
2003.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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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교보빌딩은 근사한 건축물이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차분한 색조의 대리석 바닥, 쾌적하게 설계된 접객 공간, 푸르른 나무들까지 반갑게 방문객을 맞아준다. 로비의 중앙에는 안내 데스크가 있고 그 안에는 유니폼을 입은 아름다운 직원이 도도하게 서 계시다. 로비의 의자에 앉아 유심히 지켜보면 조금 수상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지하 서점에 가려는 것 같지도 않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다. 그들은 예리한 눈초리로 건물의 곳곳을 살피며 천천히 걸어 다닌다. 처음엔 보폭도 좁고 속도도 느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보폭이 넓어지며 눈초리도 매서워진다. 그렇게 되면 안내데스크 아가씨와는 더욱 자주 눈을 마주치게 된다. 양자의 긴장이 높아지고 땀도 흐르고 결국 급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 "저, 화장실이…"안내데스크의 직원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익숙한 동작으로 구석에 웅크린 은행을 가리킨다. 그 근사한 빌딩 로비의 메인 화장실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옹색한 그 문제의 장소는 은행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청원경찰의 눈총을 받으며 오른쪽으로 꺾어져 건축가의 실수로 생겨난 듯한 빈틈 속에 숨어 있다. 화창한 여름날 예쁜 아가씨한테 화장실 위치나 물어보게 만드는 건 건축가의 의도일까 아니면 주인의 심술일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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